나는 2002년 월드컵 이후, 2018년 월드컵 조별예선 독일전의 마지막 10분 정도를 제외하곤 그 어떤 축구 중계도 본 일이 없다. 국내는 물론 해외의 축구 선수 이름과 팀도 전혀 모른다.

1987년. 중학교 2학년 여름. 담임이었던 총각 기술 선생님은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그는 당구 큐대를 들고 다니며 덩치가 큰 껄렁한 녀석들을 내리치며 정의를 구현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체육교사들을 제치고 의욕적으로 학교의 체육특성화에 힘썼다. 그는 교장과 교육청, 부모들을 설득 해 배구부와 육상부를 만들었다. 선생님은 이 가난한 동네의 아이들을 달려라 하니로 만드는 홍두께 선생 같은 존재였다. 학교폭력과 가출 및 탈선은 사라졌고 교실엔 활기가 넘쳤다.

전교의 말썽꾼들을 모아 급조한 배구단은 밤낮으로 흙바닥에서 눈물과 땀이 뒤범벅 되어 열심히 뛰어 다녔고 스포츠 만화의 주인공들 처럼 승승장구 했다. 그리하여 어느 토요일 오후 우리반 중 나를 포함한 일곱여덟인가는 다른 학교에서 열리는 배구대회에 응원을 하러 원정을 가기에 이르렀다.

급우들과 버스를 타고 그 다른 학교로 가던 중 들른 선생님의 자취방에서 여러 스포츠 관련 전문 전공서적들을 보게 되었다. 그는 하면된다는 투지의 화신이었지만 주먹구구가 아닌 이론을 갖춘 노력하는 교육자였다.

우리학교와는 달리 강당마저 있다는 그 부자 학교로 향하던 도로는 한창 공사중이었고 흙먼지가 뿌옇게 일었다.

강당안에선 오후 내내 여러 학교의 경기가 이어졌고, 열띤 응원전이 벌어졌다.

나는 강당 밖으로 나와 학교를 둘러 보았다. 건물들은 10여년 내에 지어진 것들이었다. 저 멀리 운동장에서 누군가 혼자 축구공을 갖고 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가 공을 허공으로 잘못 찾고 공은 내가 있는 쪽으로 굴러 왔다. 나는 공을 그에게 패스해 줬고 그는 목소리를 높여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금 공을 내가 있는 곳과 가까운 트랙 바깥으로 찼다. 나는 공을 따라갔고 그도 달려왔다. 그는 내가 다시 굴려 준 공을 손으로 들어 올리고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괜찮다는 나에게 그가 다가와 한게임 하실래요? 라고 물었다.

그는 이리저리 꽤 공을 잘 다루며 나를 따돌렸고 두세차례의 골을 성공 시켰다. 나는 키에서부터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는 내게 몇 학년이냐고 물었다. 나는 학년과 함께 이 학교 학생이 아니며 배구 경기에 응원 왔다는 걸 말해 주었다. 그는 3학년이었고 그 학교의 학생이었다.

그는 내게 공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잘 배우지 못했다. 여름 한낮의 태양빛에 땀에 절은 그와 나는 강당 쪽의 그늘로 향했다.

우리는 포카리스웨트 로고가 크게 그려진 자판기에서 각자의 주머니에 든 용돈으로 캔 음료수를 뽑아 먹었다. 그는 축구에 대해 스포츠 정신과 태도가 깃든 훌륭한 말을 몇마디 했다. 그의 말에서 그가 운동을 잘하지만 선수는 아니라는 것과 그는 노력형의 사람이며 공부도 잘 하는 모범생이라는 걸 짐작 할 수 있었다.

강당 안쪽으로부터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와 나는 뭔가 서로 행운을 빌어 주는 말을 건네고 서로의 미래를 위한 어떤 진심 어린 악수를 나눴다.

그와 나는 서로 이름을 물어 보지 않았다.

나는 그 얼마 이후 학교 운동장에서 수비수를 등진 턴에 이은 바나나킥으로 골을 성공시켰다. 군대에서는 전방 공격수에게 다이렉트 어시스트를 해 주기도 했다. 원래 축구에 관심이 없어서 군대 이후로 축구 공에 발을 대 본 적이 없다.

나는 히딩크가 물러난 이후의 한국축구는 쓰레기이며 유럽리그는 승부조작과 도박으로 점철된 가짜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그 날의 학교가 어디인지 그 때 이후로 도통 기억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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