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걱정 말아라. 1973년 당시 유럽에 갔을 때 영국 기자가 당신은 누구와 장사하러 왔냐는 질문을 했는데, 지금 까지 나는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매수 당하지 않았고 옳은 길을 걸어오고 있다. 물론 피칠갑하는 무대 연출을 하는 의문스런 레이디 가가를 만나기는 했지만, 단지 그 뿐이다. 그들이 표면적으로 불교를 이용하려 한다해도 그들은 스스로 경험해 보지 못한 마음의 차원을 모를 뿐이라서 안전하다. 베트남을 공산화 시킨 틱낫한 같은 좌빨 소승 책장사와 나는 다르다.

낮은 상태의, 평화니 인류애니 하는 비틀즈-현상학-힌두교스러운 삼류 종교의, 마음을 대상화하여 맑음을 추구하는 명상이랄 것들은 그 나름의 수준에서 가능한 마음의 본성의 한 측면을 보기는 하기 때문에 그러한 환으로 인해 명쾌해야 할 현상은 흐려지며 대게 그것을 붙들고 소중히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불교의 뿌리가 깊으니 진리의 추구와는 상관 없는 그런 종류의 귀신 씨나락 까먹는 경향들을 잘 파악하도록 하고 대상이 없는 절대의 마음을 깨달아 현상과 현상 아님도 없고 성과 속도 따로 없는 대승의 대오각성을 반드시 이뤄 달라. 그래서 공산주의와 중국을 무너뜨리고 티벳의 자유를 쟁취하도록 하자.

서로 다른 사람들 각자가 ‘근본적인 것을 생각하는 한’ 우리는 조화로울 수 있기는 하다. 중도에 대해 나는 수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말하지만 알아 듣는 사람만(특히 한국의 제대로 된 인간들은) 알아 들을 것이다. 그걸 애매하게 중간이니 평화니 하는 것과 연결 시키지는 않겠다.

영혼의 충족 같은 정서적인 느낌을 갖는 견해랄 것은 붇다의 가르침은 물론, 그것을 경험적으로 연구한 용수(나가르주나) 등의 고대 불교 대학 연구나, 현재도 내가 인지과학 및 뇌과학자들과 하고 있는 연구에서 중요시 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해와 논리를 기반으로 한 감정인 자비 외에 다른 것들은 다 무지에 근거한 감정이다. 무식한 소리하지 말자.

달라이라마가 세계적 변동의 해인 1973년에 유럽을 방문하고, 이후 미국 상원의 개원 기도에도 참석한 것들을 두고 음모론자들은 달라이라마도 음모론의 배역 중 하나라고 보는 경우 있다. 하지만 달라이라마는 기존 신비주의자들과는 달리 불교만의 법(法. Dhamma)을 정확히 분별해 가르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달라이라마와 달리 프랑스에 자리 잡은 베트남 망명 불교의 틱낫한의 경우 그의 조국 베트남이 적화통일 될 때 불교 지도자들이 공산주의에 대해 함구하거나 지지해 결과적으로 수많은 생명을 몰살 시킨 역사적 책임에 대한 비판이 존재한다.

틱낫한은 한국 불교에 대해 현대적이고 부가적인 율을 제안한 바 있어 붇다의 유지인 율을 대부분 없애라는 것에 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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