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년 전, 두 명의 고등학교 친구와 술을 마셨다. 그날 우리 셋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그러나 그 중 한 명과 나는 서로의 얼굴과 이름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우리 학교는 대부분의 당시 한국의 고등학교가 그랬던 것 처럼 이동수업을 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시간을 같은 교실에서 지냈다. 체육시간엔 몇그룹인가로 나눠 가벼운 공놀이를 하며 서로 친해 질 기회도 있었기에, 비록 한 반에 60명에 가까운 시절이긴했지만 15년이 시간이 지났다고 서로의 얼굴과 이름을 전혀 기억해 내지 못하기는 힘들었다.

우리는 담임선생님의 이름과 그의 담당 과목, 반 친구들의 이름, 교실에서 있었던 일 등을 되살리는 열띤 토론 끝에 그와 내가 같은 반이었다는 것에 어색하게 서로 동의했다.

이름과 얼굴 중 하나를 기억 못하더라도 조금 얘기를 나누다 보면 기억이 날만도 했지만 그와 나는 두시간이 넘도록 끝내 서로를 전혀 기억해 내지 못했다. 나는 이 일에 대해 좀 연구해 보고 글을 쓰기로 하겠다고 했다. 그들은 웃으며 잘 해보라고 했고 우리는 자리를 접었다.

지금 당시의 두시간여 동안의 만남을 떠올려보면 그와 나는 서로에 대해 어떤 종류의 심리적 억압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우리에겐 집단 기억상실을 일으킬 만한 특별한 사건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평범한 입시생의 일과 속에서 여느 학교, 여느 고3 교실에서도 있었음직한 소소한 긴장과 농담들 외엔 특별한 일들이란 우리에겐 없었다.

1991년을 전후로, 국제적으로는 당시 디지털화된 전쟁인 걸프전이 있었으며, 영어 선생님은 멀지 않은 미래에 눈 앞에 서 보는 것 같은 현실적인 화질의 HDTV 시대가 열릴 것으로 우리의 삶은 가상과 현실이 혼재 되어 여러 의미에서 달라질 거라며 흥분했었다. 광고회사로 이직한다던 사회선생님은 우리가 함께 떠나 보냈던 순수의 시대에 대한 감회에 젖어 앞자리에 앉은 친구와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제3차산업혁명에 대한 특별 칼럼들이 신문을 뒤덮었고 움베르토 에코가 서점가를 휩쓸었다. PC통신이 처음 시작되었고, SBS가 개국했다.

그날 집에 오며 생각한 이론 중 하나는 통학로와 생활반경이었다. 우리집은 1학년 때 학교정문에서 5분이 채 걸리지 않는 구로구청 대로변에서 살았으며 2학년 부터는 25분 쯤 걸어야 하는 신도림역 주변으로 이사했다. 나와는 달리 그는 3년간 학교에서 먼 동네에서 버스로 통학했다고 말했다. 그와 나는 공간이 매개된 경험을 기억한다는 측면에서 주관적으로 서로 다른 학교를 다닌 것이었다. 우리 둘다를 기억하는, 알콜섭취를 전혀 하지 못하는 나의 친구는 운전석의 창을 내리고 담배에 불을 붙인 후 점점 사건이 미스테리에 빠져든다고 말했다.

1990년, 혹은 1989년. 가평인가 어딘가로 떠났던 학년 수련회에서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식판과 탄내나던 밥도, 장기자랑도, 캠프파이어도, 쏟아지는 별을 보고 누워 부모님을 생각하라는 대사에 눈물을 흘린 일도 아니었다.

내가 경험했던 가장 독특한 일이 일어난 시간은 한밤 중 학교로 돌아오는 관광버스가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전혀 다녀보지 않았던 영등포구의 생경한 거리를 지나 학교에 도착한 몇 분 간이었다.

실내등을 끈 상태에서 모두들 잠에 빠져 있었지만 나는 짧은 순간 창밖으로 지나친 한적한 그 거리의 느낌으로부터 사적으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타임라인이 열린 것을 알았다. 사회선생님과 눈물을 흘렸던 키작은 친구가 빵과 우유를 챙기다 몸을 돌려 나를 바라 보았다.

집에 돌아온 나는 졸업 앨범을 펼쳤다. 그와 나는 서로 다른 중학교를 나왔고 1, 2학년 때는 다른 반이었기에 우리에게는 비교적 좁은 확률만이 존재했다. 같은 반 뿐만 아닌 다른 어느 페이지에서도 그를 찾아 낼 수 없었다. 며칠 후 나를 우리 동네에 내려줬던 친구는 전화를 통해 그날 밤 서로 착각했던 거 아니냐고 말했다.

그날 이후 십년 동안 그를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다. 그의 이름은 그날 이후 까먹었고 그날 함께있던, 우리를 둘 다 아는 친구가 누구였는지도 지금은 정확하지 않다. 나에 대해서 그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한다.

여러 가능성이 존재한다. 고3 시절 나른한 학교수업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주로 뒷자리에 앉아 낮 동안엔 잠을 자며 에너지를 비축했고 학교가 끝나자 마자 뛰어 나와 신도림역 건너편의 지금은 없어진 대형 단과학원에서 집중적으로 점수를 벌기 위한 공부를 했다. 그는, 아마도 나와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아 조용히 내신을 올리고 자율학습을 했을 것이다.

그날 나눈 대화에 따르면, 그는 괜찮은 대학을 나왔고 나쁘지 않은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그는 조용하게 여러가지를 생각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와 나는 서로 예의를 지켰고, 적당히 친절했으며, 사용하는 단어와 억양이 부드러웠다.

그와 나는 인간관계에서 정서적인 것들을 쌓아가는 것보다는 현상에 대한 평가를 보류하고, 필요 없는 것들을 빠르게 삭감해 나아가는 도시적인 매끈한 성격과 태도를 체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었다고 여겨진다.

그와 나는 어린시절 부터 확립 되었을 서로 다른 자신만의 삶의 스타일을 가진 것이 분명했다. 나와 같은 식의, 조직과는 상관 없이 덜컹 거리는 삶을 살아온 연구직의 방향과 그와 같은 식의, 비교적 안정을 추구하는 관리직의 방향은 삶에서 절대적인 파워의 주관적 관점을 형성시킨다. 그날 만난 그와 나는 서로의 주관성 안에서 평생 서로를 절대 공유하지 않은 시간을 살아 온 것이었다. 도시전설은 겉으로 보기에 비슷해 보이는 것들 사이의 명확한 차이에서 발생한다.

여기에 어떤 나쁜 해석이 필요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보편성과 익명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고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 협력하고 있다. 이를 인간개발의 고도화라고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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