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절되는 동학

많은 한국인들의 의식에는 동학운동의 기억과 가치가 잠재해 있다. 동학운동을 반 봉건운동이라 보기에는 물의가 있다. 이는 조선은 표면적으로 왕권에 의한 중앙집권 국가였지만 내부적으로는 붕당과 세도정치에 의한 이도저도 아닌 떼거리 주의 국가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가장 발달한 형태의 이기론을 얻긴 했지만. 동학을 불러 일으킨 건 중앙집권의 영양이 미치지 못한 부패였다. 당시 신분제도는 이미 많이 약화 되었거나 유명무실해져 있었다. 동학의 본질은 반부패, 민주화 운동이며 이후 정신분열적인 주장이 덧 붙여졌다.

임시정부에 동학운동의 정신을 이은 김구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이승만의 주도로 대한민국은 이후 우여곡절 끝에 입헌군주제를 포기한 현명한 선택을 했다. 해방 후 마르크스 주의에 의해 동학은 민중에 의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취급되었고 그걸 지금의 대부분의 좌편향 교과서들이 가르치고 있다. 동학운동과 민족종교의 정신은 그것과 상관이 없는데도 말이다. 여기서 사대부이자 천주교 신자였던 안중근이 왜 동학을 미워했는지에 대한 답이 나온다.

동학은 천도교라는 민족종교의 산물이다. 이와 동시대 증산도, 대종교 등 여러 민족종교들이 탄생했다. 이들의 사상적 뿌리는 쉽게 말해 단군사상이었다. 이들은 모두 결성시기에 이미 그 철학적 수준이 그리 깊지 않았으며 100여년이 훌쩍 지난 오늘날에도 현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현대의 민족종교들은 불교-유교와 함께 전개된 한국 정신문화의 심원한 경지로 우리를 안내하지 못하고 있다.

어느 때인가부터 우리는 개천절 아침에 티비에서 중계해 주던 제천행사를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되었다. 환단고기는 한국적 시오니즘 음모론으로까지 여겨지고 있기도 하다. 증산계통은 대체적으로 긍휼한 민족사상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 개종자의 종교적 수준이 낮다.

80년대 중반 그 분야에서 선구적이었던 계간지 선사상(禪思想)은 소태산 박중빈의 특집을 실었다. 박중빈은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담백한 깨달음을 가진, 그러나 깊이 계발되지는 않은 벽지불이나 독각이랄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불교가 조용히 수행하는 집단인 줄 알았다. 그러나 원불교는 3류종교인 유물론, 공산주의, 사회주의, 주체사상에 가까와지고 말았다. 특히 힌두교스러운 평화를 내세웠다. 그 결과 소태산의 가르침과는 십만팔천리 떨어지게 되었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예언들

민족종교의 도참(예언)적 내용, 개벽(혁명)적인 사회 패러다임 특징, 제정일치적 왕도사상은 현대사에서 민족해방운동, 코민테른, 주체사상, 혹은 우리민족끼리라는 흐름으로 이어졌고 최근엔 문재인에 대해 유리한 이미지를 형성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겉으로 크게 드러나진 않았지만 그걸 적극적으로 이용한 자들이 있었고 혹은 은연중에 우리들 내부로부터 그런 의식이 표출되었다. 드루킹은 송하비결을 해석하며 트럼프가 저격 당한다고 했다. 사실 국제정치의 전반적인 구도는 시진핑이 서세(미국, 이스라엘 등)에 의해 공격당하는 그림인데도 말이다. 우리 전통사상이 과학적으로 연구되지 않은 결과 완전히 잘 못 해석된 것이다. 현대 대한민국의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의 어디에서도 우리 전통사상은 제대로 연구되고 있지 않다.

많은 철학자, 사상가, 신비주의나 동양철학에 근거한 예언가들, 미래학자들이 한국의 밝은 앞날을 예언했다. 그것이 인간 정신을 노예로 옭아매고 책임을 정부라는 시스템에 전가하는 사회민주주의로의 그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언이란 낮은 설명 수준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고도의 과학에 가 닿지 못한 정치적 전망일 뿐이다. 미래의 모습은 정해져 있지 않다.

구시대 인간들이 서식하는 자유민주공화국

중우주의의 표본 같은 현재의 대한민국을 보면 예언서들이 전하는 뛰어난 지도자가 형식적으로 필요 할 거 같은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세상은 이미 지나갔다. 현대는 왕도주의적 지도자나 정치 시스템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이 시대는 개개인에 이미 내면으로부터의 무한한 자유가 쥐어져 있는 시대다. 단지 많은 이들이 그걸 모를 뿐이다. 홍익인간과 재세이화의 어디에도 우리민족끼리라는 배타성과 파시즘은 없다. 자유민주주의라 형식화되는 자연적인 인류 정신의 진화는 우리의 전통사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한국의 유마거사라 불리는 백봉 김기추 거사의 제자들이 쓴 책 ‘공겁인’엔 현대사회와 인간 의식에 대한 내밀한 사실이 허심탄회한 고백과도 같이 담겨있다.

백봉 거사의 제자로 오랜 기간 깨달음을 위해 노력해 온 수행자 중 하나는 말한다. 현대사회의 인간들은 지력의 발달로 인해 예전의 선사들이 말해 온 제 1단계의 깨달음은 이미 다 이루고 있는 걸 시간이 지나 알게 되었다고. 어떤 불교 학술대회에서는 깨달음이 불교만의 것이냐, 기독교도가 깨달으면 어쩔 것이냐는 논의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개개인에 있어 본격적인 불교적 깨달음은 그만한 마음의 중력이 모아져 신해행증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전문적이고 테크니컬한 측면이 있기는하다. 스승들은 말한다. 자기를 발견했을 때가 마치 사춘기 처럼 가장 어려운 것이라고. 대한민국은 사춘기를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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