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은 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오두막을 찾아갔다. 그의 월든(Walden)을 말하며 평생의 지기를 만난 것 같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때문에 사람들은 소로우를 크게 잘못 이해하고 있다. 제대로 소개 안한 법정스님의 잘못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좌파 언론과 출판의 미디어 전략이 개입된 결과라 보는 것이 적절하다.

대한민국은 소로우를 자연의 품에서 가구를 별로 들여 놓지 않는 간소한 삶을 추구하는 것으로, 안빈낙도하는 도가적 풍모를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것으로, 힙스터 취향, 일본 선불교 스타일, 미니멀리즘, (원래 존재하지 않는)욕망의 제거, 좌파적 세계관으로 소비하고 있다.

실상 소로우는 좌파와는 상관이 없다. 개인 생활의 사소한 취향과는 별개로, 그는 이상적인 상태에서는 세금이 필요 없다는 최소 정부를 지향한 과격한 자유주의자였다. 이는 현대의 아나코 자본주의를 통해 법인세를 낮추는 트럼프의 사상적 토양이 되고 있다. 비슷한 내용을 정규재도 그의 방송에서 다룬 적이 있다. 

법정스님은 정통적 불교 가르침 보다는 여러 하위 문화적 요소들을 끌어 모아 불교를 대중화하려고 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이런 식의 불교 대중화, 이류종차의 방법이란 이미 인간의 인지가 발달한, 정규교육만 받아도 상대성원리와 양자역학까지 배우는 시대에 쓸모 없어졌다. 일승의 최상승을 추구하지 않는 불교란 붇다가 말하듯 불교가 아니며 살아남을 수 없다. 강조한다.

붇다는 진리와 현상의 간극을 없애 버렸다. 인간은 수천 년 동안 그 간극을 벌리려 발버둥 쳤지만 이제 세상은 달라 졌다. 진리와 현상이 다른 세상은 끝났다.

2류스런 방법을 주장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카톨릭과의 교류, 민중신학 (둘 다 유물론을 불러 일으키는 것들이다), 힌두교의 뽕빨스런 평화, 불교스러워 보이는 명상-대중문화적 관능을 전시하는, 소확행 같은 좌빨 포르노 작가 하루키스러운, 불교 교리와는 아무 상관 없는 라이프스타일 같은 것들을 추구하고 있다.

정보화가 일상이 되고 화두 해설서 까지 나온 마당에 화두를 챙기는 방법을 고수하는 공부방식에도 비판은 가해진다. 자아나 참나나 불성이 그대로 생활이 되는 여래선이 아니고서는 4차산업혁명시대 인간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지 못한다.

한국 현대사를 통해, 명동성당으로부터 조계사로 시위의 무대가 옮겨진 것, 차례대로 친좌파적 행보의 스님들이 대중매체에 의해 스타로 띄워진 것, 조계종 역대 총무원장을 CIA가 임명했다는 의혹, 어떤 스님들의 두문불출, 봉은사가 박원순에 의해 강남 좌빨의 성지가 된 일, 불교닷컴 같은 불교와 관련 없는 좌익단체가 PD수첩과 손을 잡아 전략적으로 불교를 공격하는 일, 불교 정보조작이 체계적이며 대규모로 일어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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