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는 제3차 산업혁명 시대 – 앨빈 토플러의 표현대로라면 지식사회를 가능하게한 퍼스널 컴퓨터라는 영역을 지구인에게 선사했다. 흔히 애플이 없었어도 컴퓨터는 경량화를 거쳐 퍼스널화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스티브 잡스는 지독하게 기술자들을 몰아 붙였다. 어댑터는 경량화 되었고, 스티브 워즈니악은 PCB를 간소화 했으며, 모니터와 키보드를 한데 집어 넣은 걸 만들어 냈다. 애플의 기업문화는 ‘고함문화’였다고 한다. 삶과 세계에 대한 골수 혁신론자였던 스티브 잡스는 변화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원없이 달달 볶고 갔다.

결론적으로 스티브 잡스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제품개발의 핵심을 이해한 뛰어난 엔지니어이자, 디자이너며, 제품 기획자이자, 비즈니스 맨이었다.

“…To design something really well, you have to get it. You have to really grok what it’s all about. It takes a passionate commitment to really thoroughly understand something, chew it up, not just quickly swallow it. Most people don’t take the time to do that.”

“무엇인가 진짜 잘 설계하려면 확실히 이해해야 합니다. 본질을 잘 파악해야 합니다. 완전히 파악하고야 말겠다는 열정으로 전념해야 합니다. 그저 대충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꼼꼼하게 심사숙고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일에 시간을 들이지 않습니다.”


https://www.wired.com/1996/02/jobs-2/

이제 스티브 잡스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그의 주변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펴 보도록 하자.

제품개발과 마케팅을 통합한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는 제품과 상관이 없는 독립적인 마케팅을 싫어 했고 제품개발과 마케팅 과정을 통합했다.

2005년에서 2011년까지 존슨은 스티브 잡스와 직접 소통하는 몇 안되는 애플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존슨에 따르면 스티브 잡스 치하에서 가장 꺼려지고 미움을 받아왔던 단어 두 가지는 ‘브랜딩’과 ‘마케팅’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브랜드를 텔레비전 광고나 여타의 인위적인 것들과 연결시켜 떠올린다고 스티브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한 것은 제품 자체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인데… 그래서 어떤 때에는 ‘브랜드는 더러운 말이다’라고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마케팅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팔아야만 하는 경우에 성립이 됩니다. 당신이 가치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제품에 대해 무언가를 가르쳐 줄 수 없다면, 제품으로부터 많은 것들을 고객들이 취할 수 있게 돕지 못한다면, 당신은 팔기만 하는 겁니다. 그 상태로 그냥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애플은 신제품의 론칭 캠페인을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의 교육으로 간주했어요. 애플이 만들어낸 신제품을 사람들이 사용하게 되면서 얻게 될 대단한 경험을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으로”

“애플에서 중요했던 점은 마케팅팀이 제품 개발팀과 엔지니어링팀 바로 옆에 있었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마케팅팀 사람들이 제품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었고 제품 개발과 엔지니어링의 모티베이션이 무엇인지, 제품을 통해 성취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신제품이 사람들의 삶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되기를 원했지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는 거죠. 우리가 가까웠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모든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에 이 모든 것들을 매우 명확하게 옮겨 놓을 수 있었던 겁니다.”

영어원문: http://www.entrepreneur.com/article/232343
번역: http://acase.co.kr/2014/03/20/apple/

스티브 잡스의 방식인 마케팅과 제품 개발을 통합하는 것의 장점은 근래 구글 파이어 베이스(Firebase)를 통해 나타난다.

냉혹함과 단순함

스티브 잡스는 모든 관계에서 냉혹함을 이용했다. 그러므로써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관계’라는 정치적 중력에서 벗어나 혁신을 주도할 수 있었다.

저자 켄 시걸(Ken Segall)은 애플, 넥스트, 인텔, 델, IBM, BMW 등 유명 기업의 광고와 마케팅을 맡아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17년 넘게 스티브 잡스의 조력자로 일했으며, 1997년 잡스가 고사 직전인 애플에 복귀했을 때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 캠페인을 기획해 애플의 부활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또한 아이맥(iMac)이란 제품명을 고안해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로 이어지는 아이(i) 시리즈의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현재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으며 북미, 유럽, 아시아 각국에서 광고와 마케팅 강연을 하고 있다.

목차

1. 냉혹하게 생각하라Think Brutal
2. 작게 생각하라Think Small
3. 최소로 생각하라Think Minimal
4. 가동성을 생각하라Think Motion
5. 상징을 생각하라Think Iconic
6. 표현 방식을 생각하라 Think Phrasal
7. 평소처럼 생각하라Think Casual
8. 인간을 생각하라Think Human
9. 회의적으로 생각하라Think Skeptic
10. 전쟁을 생각하라Think War
11. 앞서 생각하라Think Ahead
마치는 글 · 다르게 생각하라 Think Different

냉혹한 경영인과 냉혈한은 다르다. 단순함은 냉혹함에서 비롯한다

켄 시걸은 잡스 제1의 경영 원칙으로 잡스 특유의 기질이기도 했던 ‘냉혹함’을 꼽는다. 여기서 말하는 냉혹함은 잡스가 냉혈한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조직이 최선의 결과를 창출하도록 일의 과정과 평가에서 할말을 분명하고 단호하게 한다는 뜻이다. 비즈니스 세계에는 업무적 관계를 고려해 명확한 진실을 말하지 않거나 회피한 채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경향이 있는데, 잡스는 이로 인해 업무의 과정과 결과가 불투명해져 손실이 발생하는 것을 경계했다.

일의 그릇된 방향 설정에 대해서는 혹평을 쏟아부어 ‘회전포탑’이라 불리기도 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하고 거침없이 전달했기 때문에 직원들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빠르게 알아챌 수 있었고, 그의 냉혹한 평가로 인해 자신의 상황과 개선점을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잡스의 냉혹함 때문에 애플과 협력사의 관계가 나빴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서로에게 더할 나위 없이 솔직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겨도 금방 해결되었고 이해관계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업계 사상 가장 성공적이고 이례적인 파트너십 사례로 알려진 애플과 광고대행사 ‘TBWA샤이엇데이’는 1984년의 매킨토시 광고부터 2014년의 아이패드 에어 광고에 이르기까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냉혹함이 오히려 발전적인 관계를 만든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Yes24 출판사 서평

삶의 경험과 디자인

29세의 나이로 거대 글로벌 기업의 디자인 팀을 이끄는 수장이 되었으며 30대에 이미 전 세계를 뒤흔든 히트 제품을 연달아 내놓은 사람. 크리에이티브 업계의 오스카 상이라 불리는 D&AD 상 최다 수상을 비롯해 IDEA 금상, 레드닷 디자인 상 등 만드는 제품마다 디자인 상을 휩쓸었고 45세에는 영국 왕실의 기사 작위를 받은 최고의 산업 디자이너. 아이맥과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위대한 제품을 탄생시킨,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모든 이가 동경하는 혁신가. 바로 애플의 디자인 총괄 수석 부사장 조너선 아이브다.

목차

1. 학창 시절
2. 영국식 디자인 교육
3. 런던 생활
4. 애플 입사 초기 시절
5. 돌아온 잡스와 만나다
6. 연달아 대박을 터뜨리다
7. 철의 장막 뒤의 디자인 스튜디오
8. 아이팟 디자인
9. 제조와 재료, 그리고 여타 문제들
10. 아이폰
11. 아이패드
12. 유니보디 시대를 열다
13. 애플의 MVP

아이브는 어떤 제품을 디자인할 때 무엇보다 먼저 ‘디자인 스토리’에 집중한다. 사용자에게 어떤 경험을, 감성을, 인식을 안겨 줄 것인가 하는 점이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한다. 스스로 으스대며 사용자 위에 군림하려는 제품을 아이브는 싫어하고 경계한다. 사용자에게 친밀하고 정직하게 다가가며 제품 본래의 목적에 몰입하게 만들어 궁극적으로는 보다 나은 삶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 이것이 아이브가 생각하는 디자인의 핵심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업을 가진 많은 이들이 눈에 보이는 외양, 숫자로 표현되는 기술에 집착하곤 한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데에 있다. 외관부터 사용자 인터페이스까지 제품을 이루는 모든 요소는 이 사용자 경험을 구현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바로 그것에서 가치가 창출되기 때문이다. “물건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에 대한 사용자의 인식을 디자인한다.”라는 아이브의 말에 아이맥과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우리 삶에 근본적인 혁신을 가져온 히트 제품들의 비결이 담겨 있다.


Yes24 출판사 서평

스티브 잡스를 다룬 영화 중 애쉬튼 커쳐가 주연한 영화 「잡스」(2013)는 잡스가 자신의 아이와 여자친구를 매정하게 버리고 천재 개발자이자 그의 친구인 스티브 워즈니악에게 개발 비용을 속인 유명한 일화들을 가감없이 보여 준다. 잡스는 아타리의 게임개발비 5천달러 중 스티브 워즈니악에게 350달러만 지급했다. 영화는 집요하고 강박적으로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는 스티브 잡스를 클로즈업하며 끝난다.

빌게이츠와 잡스는 서로를 깎아 내리는 경쟁과 서로를 배껴먹는 협력을 계속했다.

전통적인 선-악 구분은 스티브 잡스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는 선과 악이라는 낮은 상태의 번뇌에서 떠난 불교적 관점에 따른다.

스티브 잡스는 불교 명상 수행인 선(Seon. 일본어로 Zen)을 했다는 것은 널리 퍼진 사실이다. 오늘날 전세계의 수많은 기업들은 명상을 리러십 교육의 일부로 채택하고 있다. 다만 명상에는 불교의 명상과는 다른 여러 정신적 경향에 몰두하는 뉴에이지-힌두교스런 조류가 있다.

불교 명상은 자체 내에서 여러 경향을 세분화할 수 있다. 가령 구글의 명상 그루였던 채드멍탄이 가르치는 명상의 조류랄 것은 일상화된 체화된 선이기 보다는 좌선과 수식관에 의한 몰입과 그를 통한 심신의 이완, 이어지는 집중된 엔지니어링 업무 활성화에 그치고 있다. 이에 비해 스티브 잡스는 삶 전체의 태도에서 불교적 사상을 배우고 체화한 것으로 나타난다.

Jobs (2013)

잡스와 일본 최초의 접점은 선(禅)이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양자로 입양되어 어려서부터 자기 자신 찾기 등 여러가지의 것을 시도했다. 인도로 수행을 다녀온 시기도 있었다.

그런 그가 최후로 도착한 곳은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선센터였다. 지도자는 니가타(新潟)현 카모(加茂)시 출신의 조동종(曹洞宗, 선종계통의 일본불교)의 오토가와코분(乙川弘文)이라 불리는 승려였고, 잡스는 그를 스승으로 따랐다. 1985년 창업했던 잡스의 회사 중 넥스트는 오토가와를 정신적 고문으로 맞이했었고, 잡스 자신의 결혼식에도 오토가와를 초대하였다. 젊은 시절, 아직 영어가 서툴렀던 오토가와에게 잡스는 열심히 사물의 진리와 본질에 대해 심오한 질문을 했다고 한다.잡스는 그 후에도 조동종에게 강하게 매료되어 후쿠이(福井)현의 에이헤이지(永平寺)에 출가하려 했던 적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일본어 원문출처: 니폰닷컴 https://www.nippon.com/ja/currents/d00010/  (한글번역: 위만복) 

잡스의 철학과 미의식에는 이러한 “선”이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 하다. 예를 들어 잡스가 만년에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생을 상대로 했던 연설을 보면 그는 매일 “오늘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이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했다. 때로는 냉철하게 중요한 결단을 내렸다고는 말하지만, 이런 사고방식 또한 선문답으로 통하는 면이 있다.

잡스가 계속 영향을 받았던 곳은 가전메이커인 소니. 특히 공동창업자인 모리타아키오를 존경했던 것으로 잘 알려진 잡스는 사망하기 12년 전에 열린 신제품발표회에서 그 직전에 사망했던 모리타를 추모했다.

일본어 원문출처: 니폰닷컴 https://www.nippon.com/ja/currents/d00010/  (한글번역: 위만복) 
아이맥 발표회 당시 소니의 공동 창업자, 모리타아키오(盛田昭夫)를 추모하는 잡스(1999.10.5)

잡스의 트레이드마크인 청바지와 검정색 이세이미야케 터틀넥의 모습도 소니 공장 종업원 제복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함. 잡스는 애플도 사원에게 제복을 입히려 했으나 사내의 맹렬한 반대가 있어서 잡스 자신만 수백벌의 제복을 주문. 그것이 바로 이세이미야케의 셔츠다.

잡스는 에후에도 이데이노부유키가 대표이사를 떠날 때까지도 소니와 깊은 관계를 유지해서, 당시 사장이었던 안도쿠니타케를 제품발표 단상에 초대한 적도 있었다. 잡스는 개인적으로도 소니의 중역과 콘서트에 가거나 일식을 먹으러 가거나 했었다. 일본을 방문했을 때 소니를 갑자기 방문하여 신제품에 대해 아이디어와 평가를 듣는 일도 있었고, 소니의 직영점 사업에 대해 열심히 배운 적도 있었다고 한다.

잡스와 관계가 강했던 또다른 일본 기업으로는 알프스전기가 있다. 애플에서 공장을 방문하기도 하고 알프스 직원을 애플로 불러서 조언을 주기도 했었던 잡스는 스스로가 알프스 공장에서 강연에 나서기도 한 적이 있었다. 알프스전기로부터는 공장자동화에 대해 열심히 배웠던 것 같다.

또한 잡스는 “단순한 것이야말로 최고의 세련”을 신조로 내걸고, 불필요한 장식을 없앤 본질적이고도 단순한 것을 좋아했었다. 이러한 미의식은 독일 바우하우스의 영향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일본의 선의 미학과도 통한다. 그는 일본의 라이프스타일과 미의식에도 큰 관심을 계속 보였다. 2000년에 발표한 아이맥 모델인 스노화이트(Snow White)는 친구인 오라클사 창업자, 래리 엘리슨 자택의 다다미방 색상에 맞춰서 디자인했다고 한다.

병을 앓고 있던 만년에도 잡스는 장남과 딸을 데리고 수 차례 교토의 사원을 순례했다. 특히 그가 즐겨 찾던 곳은 선종의 일파인 임제종(臨済宗)의 사이호지(西芳寺, 코케데라(苔寺)라고도 불린다)였다고 한다.

일본어 원문출처: 니폰닷컴 https://www.nippon.com/ja/currents/d00010/  (한글번역: 위만복) . 

국제정치와 일본 불교, 애플 디자인의 문화적 코드와 전개, 그것이 어떻게 한국 좌파 문화와 연결되는지에 대해 다룰 것이다. 스티브 잡스 혁신의 핵심은 삼성으로부터의 배움에 있고 애플의 성공은 삼성과의 관계가 핵심이다.

일본불교의 속살

1997년에 출간된 「전쟁에서의 선」(Zen at War), 그리고 더 좁게는 2003년에 출간된 「전쟁과 선 이야기」(Zen War Stories)는 미국과 유럽 선불교계에 충격파를 던졌으며 일본 불교계에도 마찬가지.

이 책은 많은 지도자급 선사와 학자들이 일본 군국주의에 대해 열정적이었다는 것을 폭로 했다. 군국주의 지지에 앞장섰던 ‘묘심사’를 포함한 임제종 지부에서는 총회에서 다음과 같은 책임을 인정했다.

“미국에서 일어난 최근의 사건들(9·11 테러)을 반성하면서 우리는 과거에 우리나라가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에 참여하여 여러 나라에 크나큰 고통과 상처를 입힌 것을 인정한다. 이것은 그 당시의 국가정책이기는 했지만 우리 종단(임제종)이 단호하게 전쟁 반대의 입장을 취하지 못하고 전쟁에 협력하는 것으로 끝맺었던 것을 실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과거 우리 범죄를 고백하며 우리의 행동에 대해 엄격히 반성한다.” (2001년 9월 27일)


출처: 오마이뉴스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1744279  

임제종을 비롯한 禪의 ‘단호함과 과격함’은 일본 군국주의 뿐 아닌 주체사상에서도 발견되기도 한다. 주체사상은 다양한 종교적 경향과 유물론을 섞은 신흥종교의 강령이다.

스즈키 다이세츠를 통해 보는 전후 일본 불교와 미국

鈴木 大拙 貞太郎 (Suzuki Daisetsu Teitarō) (1870~1966)

대학생 시절 스즈키는 가마쿠라(鎌倉) 소재 임제종 사찰인 원각사圓覺寺의 이마기타 코센(今北洪川)과 그의 제자 샤쿠 소엔을 만나 참선을 배웠다. 1893년 소엔이 시카고 만국종교박람회에 일본대표로 참석했을 때, 강연원고를 스즈키가 영역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인 1897년 소엔의 추천을 받고, 미국에 건너가 동양학자 폴 케라스가 운영하는 출판사 오픈 코트에서 동양학 출판편집 업무에 참여했다. 『노자도덕경』과 『대승기신론』의 영역본, 그리고 『대승불교개론』을 출판하여 일약 서구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불광신문 http://www.bulkw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038
1957년 에리히 프롬, 디마르티네즈와 함께 펴낸 책 ‘정신분석과 선불교’

1909년 귀국, 학습원学習院대학 교수가 되었으며, 1911년에는 그의 평생의 동지인 베어트리스와 결혼하였다. 1921년 대곡大谷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동방불교도협회를 창립하였으며, 영문학술지 『Eastern Buddhist』를 창간했다. 명저로 알려진 『Zen Buddhism and Its Influence on Japanese Culture(선불교와 일본문화에 대한 그 영향)』, 『Zen and Japanese Culture(선과 일본문화)』, 『Essays in Zen Buddhism(선불교 에세이)』 등을 통해 선을 일본 발음인 젠(Zen)으로 서구에 정착시켰다. 만년에는 정토진종의 조사 신란(親鸞)의 저서인『교행신증敎行信証』을 영역했다.

그는 프린스톤, 하버드, 예일대학 등 미국과 유럽의 유수의 대학에서 선에 대한 강연을 해왔으며, 칼 융, 하이데거 등 서구의 지성인들과 교류하고, 중국의 호적胡適과도 선 연구방법에 대해 토론했다. 인도의 신지학회 회원으로 가입하기도 했으며, 영성가 에마누엘 스베덴보리의 신비사상을 일본에 소개했다.

불광신문 http://www.bulkw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038

미국이 중국에서 망명한 티벳을 선택하기 이전, 미국에서는 일본 불교가 득세했다.

배반과 자기 기만의 현대 일본 불교

일본의 스즈키 다이세츠는 서양에 선을 소개한 가장 중요한 인물. 1912년 가을에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통해 유럽에 가는 도중에 ‘가난한 나라’로 묘사한 한국에 대한 논평

“그들(한국인)은 그들이 일본 정부의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모르고 있다. 독립이나 그러한 것들을 얘기하는 것들은 다 좋다. 하지만 그들이 스스로 서기에는 능력이나 생명력이 부족한 때에 독립을 요구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나처럼 여기를 단지 지나가는 사람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한국은 일본에 병합된 날을 그들의 부활의 날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스즈키의 1941년 저서 「무사도의 신수」 ‘무사도와 선’이라는 장에서 중국과의 전쟁을 명백히 말하거나 일본 군부를 정확히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침공에 대해 동정적 태도 암시. 스즈키의 기고 제목은 유명한 선 문구인 “망설임 없이 나아가라(邁直向前)”에서 취함

“어떤 의미에서는 ‘망설임없이 곧장 앞으로 나아가는 것’과 ‘분별하는 생각을 그만 두는 것’이 일본 국민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이 함축하는 것은 태어남과 죽음을 돌보지 않으면서 목숨을 버리고 앞으로 돌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 국민, 특히 선과 군인들의 견해가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불광신문 http://www.bulkw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038

「선과 정신분석」의 내용만은 잘 씌어졌다. 그러나 스즈키 다이세츠는 김일성과 유사한 사기-협잡-불한당 중의 하나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김일성은 가계가 확실치 않은 살인자에 떠돌이 였으나 호적세탁, 신분세탁으로 갑자기 실제했던 김일성의 이름을 얻어 영웅으로 변신했다.

보르헤스의 「불한당들의 세계사」는 사기-협잡-불한당들이 어떻게 영웅이 되며 세계사를 만들었는가를 코믹하게 기술했다. 비슷한 소설로 포스트 모던 시대의 웃지 못할 풍경을 중국의 근대가 무너지는 과정에 풀어 낸  김용의 소설 「녹정기」가 있다.
20세기의 창조자, 남미문학의 거장 호르헤루이스 보르헤스는 불교정신에 입각한 작품활동을 했다.

삼성과 스티브 잡스

이병철은 스티브 잡스에게 ‘사업이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확인하고, 인재를 중시하며, 다른 회사와의 공존공영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 는 심원한 차원의 코칭을 해 주었다.

1980년대 당시 호암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한 이형도(67) 삼성전기 부회장(상담역)이 공개한 기록에 따르면 호암과 잡스는 1983년 11월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본관 호암 집무실에서 만났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당시 호암은 타계하기 4년전으로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는 도전에 나선 때였다. 잡스는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어 하루 아침에 유명인이 된 스물여덟살의 새파란 젊은 사업가였다. 잡스는 호암과 만난 자리에서 이듬해 출시할 ‘매킨토시’ 컴퓨터를 자신만만하게 소개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호암은 그 자리에서 “굉장히 훌륭한 기술을 가진 젊은이”라며 “앞으로 IBM과 대적할 만한 인물”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어 호암은 자신에게 경영자로서의 길을 묻는 잡스에게 세계적인 사업가로서 살아오면서 철칙처럼 지켜온 세가지를 당부했다고 한다. “우선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이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확인하고, 인재를 중시하며, 다른 회사와의 공존공영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는 게 그것이었다.

잡스는 호암을 만난 뒤 매킨토시 컴퓨터의 참담한 실패로 인해 5개월 만에 본인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났다가 10년만에 회사에 돌아와 쓰러져가는 애플을 일으켜 세우고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기업가정신이 투철한 기업으로 대도약시켰다. 돌아온 잡스는 완전히 딴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독선 대신 집단창의를(인재중시), 기술 지상주의 대신 철저히 고객중심 사고를(인류기여), 독자개발 대신 대외협력(공존공영)을 중시하는 리더로 거듭나 있었던 것.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2/02/2010020200991.html

진대제 전 장관에 따르면 애플은 결국 삼성에 의해 아이팟을 성공 시킬 수 있었고 아이폰으로 이어지는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일본은 아이폰 점유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며, 애플 제품의 한국 출시는 오래전부터 세계에서 가장 느리다. 오늘날 애플은 삼성의 고객사이자 경쟁사다.

애플 기업문화의 본질: 해적 집단

스티브 잡스는 스스로 “해군보다 해적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유투브의 애플 노트북 수리의 달인은 다음의 영상 Why I don’t use Apple products 에서 애플 기업문화의 본질을 알려준다.

그가 애플 제품을 쓰지 않는 이유는 몇 푼 안 하는 사소한 저항에서 부터 시간이 지나면 고장나는 싸구려 부품을 쓰기 때문이다. 이런 건 올바른 리더십이 될 수 없다. 애플은 비양심을 떼거리로 즐기는 일종의 해적질을 자행하는데서 상당히 일본스런 색채를 드러낸다. 일본인은 근본적으로 유러피안 인종이며 그들의 본업은 대대로 해적이었다. 불량스러움, 인간으로서 필요한 양심이 없음은 일본인의 특질이다.

Steve Jobs (2015)
Steve Jobs (2015)

애플 디자인의 전개

애플의 디자인은 Scandinavian Design = Japan ZEN Style = 과격한 기능주의, 미니멀리즘으로 전개되었다. 애플 디자인의 발흥 시기는 80년대 후반 이후 일본의 좌파들이 억지로 버블이란 것을 만들어 경제를 망쳐 버린 시기 이후의 좌파정권 시기- 일어버린 수십년과  일치한다.

대한민국은 사민주의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최종 기착지인 IKEA가 유행했다. IKEA는 표면적으로 Democratic Design 표방 – 생활에서의 스트레스 경감. 과정의 혁신, 협력. 소재 등의 지속 가능성을 내세운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잘 부서지고 고장나는 학생가구로 이름 높으며, 한국에서는 월급쟁이들의 사회주의적 이상을 반영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단순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의 뱅앤올룹슨 오디오를 너무 사랑했다. 그러나 비싼 가격 때문에 살 수 없어서 고등학교 시절에는 뱅앤올룹슨 오디오 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녔다고 한다. 투병 중에는 베오사운드8을 2대 구입해서 침실과 병실에서 들었다

http://thegear.co.kr/12490

힙스터(Hipster)는 아편을 뜻하는 속어 hop에서 진화한 hip, 혹은 hep이라는 말에서 유래했고 1940년대의 재즈광들을 지칭하는 슬랭이었다.[1] 한 세대가 지난 1990년대 이후, 독특한 문화적 코드를 공유하는 젊은이들을 힙스터라고 부르고 있다. 뉴욕 브루클린의 윌리암스버그(Williamsburg), 시카고의 위커 파크(Wicker Park)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의 미션지구(Mission District)에 많은 수의 힙스터들이 거주하고 있다. 힙스터는 2, 30 대의 독립적인 생각과 반문화성, 진보적인 정치 성향, 자연친화,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과 예술, 지식 그리고 위트를 가치있게 여기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힙스터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는 쫄청바지, 무기어 자전거, 담배, 질좋은 차와 커피, 인디 음악, 독립 영화 등이 있다. 힙스터들이 추구하는 멋은 ‘노력하지 않은 멋’이다. 다듬지 않은 머리카락, 깎지 않은 수염, 뿔테 안경, 딱 붙는 하의, 늘어난 상의, 빛바랜 체크무의 셔츠와 같이 소탈한 맵시를 중시한다. 씻지 않은 듯한 모습과 몸에 새긴 문신, 애플이나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들 가운데에는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사람과 채식주의자가 많다. 이 밖에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이 많으며 그 지역의 작은 커피 전문점에서 산 커피 컵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PBR(Pabst Blue Ribbon)은 그들이 즐겨마시는 맥주 브랜드이다.

출처: 한글 위키 백과 힙스터 항목

애플은, 기술적으로는 얼리어답터, 취향으로서는 힙스터 취향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제 힙스터 취향을 대표하는 잡지 킨포크(KINFOLK)를 통해 힙스터 취향이 어떻게 한국 좌파와 연결되는지 알아보자. 이글은 다음 포스팅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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