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일이 있었지만 도무지 그 일이 있던 곳이 어디였는지 기억나지 않는 장소들이 존재한다.

중학교 1학년의 어느 가을날, 초임한 의욕적인 국어담당이면서 내 여름방학 일기 중 일부를 발췌해 교지에 실어 주었던 담임 선생님은 종례시간에 나를 불러 일으키며 교무실로 따라오라했다. 반 친구들은 뭐여 사귀는 거여?라고 수근 거렸고 선생님은 그래 사귄다 어쩔래라며 내 목에 헤드락을 걸었다.

교무실에서 선생님은 지역 교육청 주최 백일장에 자신의 추천에 의해 우리 학교의 대표로 내가 선정되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통보하고 군말없이 참전하고 올 것을 협박했다.

며칠 후 어느 오후, 나는 혼자 버스를 타고 낮설은 동네를 지났다. 노랗게 물든 가로수 사이로 낮고 가지런히 늘어 선 상가들이 보였다. 유리창을 통과해 내리 쬔 햇살이 텅 빈 버스의 바닥이며 흔들리던 손잡이에 부딧혀 빛났다. 휴일 혹은 국경일이었던 것인지 백일장이 열리던 교정엔 인적이 없고 고요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회의 참가자는 열서너명 정도는 되었겠지만 대회 담당자나 여러 참가자들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게 남아있는 기억은 그곳의 운동장 면적보다 더 높던, 시멘트 계단들과 거대했던 사열대의 인상뿐이다. 그곳이 산중턱이었든지 아마도 대략 10층 건물 높이였던 것 같다. 안내문을 받고 계단의 중간 쯤에 자리를 잡은 나는 가방에서 준비 해 간 원고지와 샤프펜슬을 꺼냈다.

제시된 글짓기의 주제는 ‘어느 가을 날’ 같은 식상하고 따분한 것이었다. 일찌감치 주어진 열장 정도의 분량을 다 채우는 것을 포기한 나는 서너 장 쯤에서 누구나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문체의 모범생 같은 글을 마무리 지었다. 그것으로 나는 도무지 이런 식의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담임 선생님에게 완곡하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가방을 챙기며 주위를 둘러보는 나의 시야에 저 만치 고개를 숙이고 글을 쓰고 있는 참가자가 보였다. 내성적이고 소심해 보이는 인상의 그 여자아이는 고개를 들어 안경 너머로 나를 바라 보았고 우리는 잠시 눈이 마주쳤다.

며칠 후 만난 담임 선생님은 잠시 빙긋 웃어 주었을 뿐 대회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수십년간 그 일에 대해 일부러 찾아 가 물은 적도, 연락한 적도 없지만, 지금은 거의 은퇴했을 선생님과 나는 서로 아무 말이 없는 채로 우리는 시간을 흘려 보내고 있다.

기억나지 않는 길을 거슬러 집으로 돌아 온 그날 이후, 내겐 그 대회의 이름이나 학교의 위치 등 그 어떤 것도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중학교 1학년 때 버스를 타고 처음 가본 동네와 학교의 이름을 기억하는 중년은 없을 것이다. 당신이 서울 혹은 부에노스 아이레스 같은 거대 도시에 살아가는, 같은 도시에서 평생 안 가본 동네가 더 많은 현대인이라면.

최근 구청에 볼 일이 있어 내가 나온 중학교 앞을 지나치게 되었다. 그리고 간밤에 깨어 생각하니 불현듯 공상과학 영화에 나올 것 같은 그 우주적인 규모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사열대를 확인하고 싶어졌다. 혹은 무언가 조급히 끝나가던 한 학년의 가을이 조용히 펼쳐지던 그 기억의 장소를 직접 찾아 가 볼 용의가 있는 것이리라.

어렵지 않다. 담당 교육청이나 졸업한 중학교에 찾아가 당시의 기록을 찾아 보면된다. 그들은 필시 칠칠치 못하게 오랜 된 학사 행정 업무기록들을 노끈으로 묶어 지하 문서고 한켠에 처박아 두었을 것이다. 담당자나 교사가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을 경우엔 야간투시경, 사다리와 밧줄, 산소 절단기를 준비하면 된다. 간단하다.

한밤의 지하 문서고에서 드디어 감격의 서류 뭉치를 찾아 헤드램프를 딸칵하고 켰을 때, 나는 놀랄 것이다. 당일오전 불친절하게 나를 내 쫒았던 담당자이면서 동시에 32년 전의 그날 오후 그 교정의 여자아이였던, 이제는 중년의 그녀와 나는 서류를 나눠 쥔 채로 다시금 눈이 마주칠 것이므로. 세상일이란, 이런 종류의 글쓰기란 원래 그런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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