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랑에서 매우 가까운 미래 남북통일을 추진하는 정부는 좌파로 묘사된다. 그것은 벽보의 문구들이 ‘주한미군철수 취소’, ‘종북물러가라’ 와 같은 것이므로 시대상을 매우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는데서 자연스레 유추할 수 있고 그 지점에서 인랑은 근사한 핍진성을 획득한다.

영화 바깥에서 좌파적인 행보와 필모그라피를 자랑하는 남자 투톱배우가 영화 인랑의 내부에서 활보하는 것으로, 이 영화는 현재 한국의 정치지형과 영화예술의 불량한 공모에 관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인랑의 주인공들은 모두 좌파 파시즘을 대변하는 악한 조직 안에 속해 있다. 그 조직이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더라도 북한의 체제대로 혹은 사회주의로 통일만 되면 된다는 이른바 종북 빨갱이나 대한민국 공공기관에 또아리를 튼 각종 인민 위원회를 환기시킨다. 시민들은 이 악에 맞서 의연히 총을 든다.

인랑의 이야기의 주요 뼈대는, 그 악에 속해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모든 조직에 대해서는 회의하는 한효주의 아나키스트적인 고민, 그 주변 캐릭터들의 조직내 다이나믹스-권력의 복마전에 관한 것이다.

김지운 감독의 영화답게 근미래의 서울은 꿈 속인양 몽롱하다. 그 공간들은 이병헌이 배회하는 서울과 호텔리어, 아놀드슈왈츠제네거가 헤메이는 옥수수밭, 송강호가 항일단체와 활극을 벌이는 경성, 정우성이 말달리는 만주와 유사하다. 그 풍경 속을 여러 사건과 이야기와 행동은 파편화된 블록버스터의 문법 언저리 어디에선가 의미없이 흘러간다. 인랑의 작은 이야기들은 김지운의 어떤 영화보다 더욱 박제화되어 미끄러진다.

인랑으로 김지운은 장선우가 블록버스터라는 형식을 영화 내부와 외부에서 파괴하는 퍼포먼스로 장르 영화와 그 산업을 명상한 전철을 밟았다.

김지운이 우파인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영화라는 예술이 던지는 질문에는 게을리 응답하지 않았다. 어찌됐든 이 영화는 김지운의 연출 의도, 김지운이라는 육체를 통해 나타난 한국이라는 증후의 사이를 힘겹게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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