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일이란 베네수엘라에서 보듯 공동체의 생명력을 죽이는 일이다. 역사적으로도 대량 학살과 굶겨 죽이는 일들이 자행되었으므로 사실상 연쇄살인과 다를 바 없는 악행이다.

일본인들은 전치사 com-을 with; together; jointly; altogether의 단순 해석인 협(協)으로 보지 않았다. 일본은 그들 내부의 자생적인 집단주의와 전체주의를 통해 Communism이 집단-전체 노동 주의임을 간파했다. 때문에 協 대신 일본어 사용에서 전체(all)를 포함하는 共을 사용했다. 공산(共産)주의는 그래서 자조적인 멸칭이다.

일본의 한자 사용에서 共은 불교의 별업(別業)과 배치되는 공업(共業)이라는 또 다른 근거를 갖는다. 일본은 불교사상에 대한 낮은 수준의 인상적 이해에 입각해 업(業)이라는 유쾌하지 않은 카르마(Karma)를 Communism에 선사했다.

한국에서 共은 ‘함께, 같이’ 로 해석되었고 그것은 여러 문제들을 불러 일으켰다.

대승적 불교해석과 그것을 확인한 선사들의 정의와 같이 업(業)은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다. 즉 한국어에서 공(共)은 공생(共生: Coexistence; Symbiogenesis)의 용례가 표현하는, 두레, 향약 등 한국 전통 사상에서 나타나는 고차원의 효율의 협력의 메카니즘, 나눔의 근거인 측은지심, 또한 우리; 울; 얼; 정신으로써의 한국 전통 사상의 일심; 한마음의 Oneness; Wholeness; 한울; 하늘 내지 그 생명력의 기민하고 빈틈없는 펼쳐짐; 均을 포함한다.

모든 일은 언어를 통해 일어난다.

붇다는 비물질의 인간이 지구라는 물질을 섭취(食)한다는 형식의 행위로 물질(體)로 환원(用) 되었으며, 현상적 마음(心)을 통해 삶(生)을 살아간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낮은 차원의 개아(Ego)적 자아를 넘어선 함께(共)하는 원리인 법공(法空; 法無我)을 현상에 대치하는 것으로 고차원의 무아적 자아(人空)가 발생한다. 이에 과거, 현재, 미래라는 현상계의 삼(三)세를 관통(王)하고 그것에 형이상학을 위한 결맺음으로써 상투라는 형식의 기호적 의미화(主)를 이뤄 내 결합하면, 주해신(主海神) 등 보이지 않는 차원의 이야기를 현상 세계에 펼지는 화엄적 세계관의 주어 – 현대적 자아(Self)로서의 주인공(主人空)이 탄생한다. 이는 주체(主體)라는 유물론에 근거한 거짓과 환상의 자아와는 격을 달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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