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신을 믿는 건 팬심이라고 생각 해 줄 수 있다. 신체를 기반으로 외연을 확장하여 세계와 우주에 편재(omnipresent, widespread)한 신성이거나 원리가 존재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야 말로 가장 덜 떨어진 것이며 진리의 추구와는 정반대의 거꾸로 가는 길을 걷는 것이다. 그런 경향은 스스로의 양심과 진리의 추구라는 몸활동을 기반으로 한 내적인 체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타나는 낮은 단계의 환영이며 의견일 뿐이다. 존재의 내부로 향한 길을 걷지 않는 한 소용이 있는 그 무엇에도 다다를 수 없다.

문제는 그들의 미혹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들은 미혹으로부터 차례대로 유물론,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파생시킨다. 그것들은 인간의 내면으로의 진입을 막고 힙겹게 지탱되는 우주의 균형을 흔들어 파괴한다. 천주교를 믿는 것들이 제아무리 나름의 명상스런 조류를 따르거나 긍휼해 보이는 심리적 경향과 치유 같은 인간과학 비슷한 것에 몰두한다해도 이들은 근본적으로 진리와 정 반대의 길을 택한 양심을 저버린 자들이다.

역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전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공 명령을 받고 어이 없어 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江〜姫たちの戦国 NHK (2011))

프란치스코 사비에르’라는 천주교 신부가 일본 땅에 1549년에 정식적으로 와서 포교를 시작하며 그와 함께 온 유럽인들이 화승총을 계속 보급했다고 하는데. 프란치스코 사비에르는 예수회 사제였다. 그는 포르투갈의 예수회 소속 신부였다. 화승총을 조총으로 개량하고 삼단철포부대를 운영하여서 일본을 제패한 오다 노부나가는 천주교 예수회를 적극 후원하였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천주교 신자였으며 예수회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인물이다. 예수회 신부 세스페데스를 같이 데리고 다니며 신부들과 함께 조선 땅을 밟으며 온갖 미사와 고해성사를 하게 한 이 인물은 정유재란 때 포로로 일본에 끌려간 강항의 ‘간양록’에 보면 그가 소오 요시도시와 함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전쟁을 할 것을 권유했다고 일본 국민들이 서로 수군수군거렸다고 말한다.
고니시가 이 전쟁을 일으킨 이유는 분명하다. 천주교는 세계의 정치와 경제를 장악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조선반도와 일본열도 그리고 중국 등지를 차지하여서 그곳에서 자본을 많이 얻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출처: 조중화 <다시 쓰는 임진왜란사>
당시 일본 측 자료에서 십자가가 그려진 깃발을 학인할 수 있다. 전란의 원인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열도 내부 갈등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과 달리 당시 대부분 일본 막부들은 조선침공에 황당해 하며 반대했다는 것이 일본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일본의 죄가 씼기지는 않는다.

1584년에 영세를 받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영세명 아우구스티노로 독실한 천주교인이었다. 그의 집안도 모두 천주교로 개종했다. 아버지의 세레명은 요나단, 어머니는 막달라, 대마도 성주의 부인인 딸은 마리아였다. 독실한 로마 카톨릭 교회 신도인 고니시(소서행장, 사진)는 마치 교황의 군대 말타기사단처럼 십자가 깃발을 군기로 사용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진중에는 스페인 출신의 로마 카톨릭 교회 신부인 세스페데스 신부가 사목(司牧)했다. 조선 땅을 밟은 최초의 천주교 성직자이자 조일전쟁을 목격한 유일한 서양인으로 전해지기도 하는 예수회 사제 세스페데스. 종군신부의 자격으로 와서 경상도 일대의 해안지방에 약 1년간 머물면서 조선인에 대한 선교에도 관심을 가지는 등, 당시 상황에 대한 4통의 서간문을 남기기도 하였다.
소서행장은 세스페데스 신부더러 밤마다 미사를 올리도록 하자고 말했다. 세스페데스 신부는 물론 휘하 병사들도 좋아했다. 그들도 로마 카톨릭 교회 신도들이었던 것이다. 소서행장 봉토였던 아마쿠사 제도는 ‘그리스도의 섬’이라고 불릴 정도였으니 당연했다.

출처: 조중화 <다시 쓰는 임진왜란사>
KBS 방영 불멸의 이순진 중 한장면

그가 거느린 장수도 대다수가 천주교인들이었다. 흑전장정(구로다 나가마다), 오도순현(고지마 쥰겐), 천초종원(아마쿠사 다네모토), 宗義智(소 요시토시) 등이 모두 일본의 기리시단으로 잘 알려진 인물들이다. 일본에서는 천주교인을 기리시단(吉利支丹)으로 불렀다. 기리시단(吉利支丹)은 Christian의 포르투갈어를 일본어로 음역한 것이다. 조총으로 무장한 이 기리시단 부대가 십자가 군기 휘날리며 조선을 침략한 왜군의 제1군이었다. 조일전쟁에 출전한 기리시단은 전체 왜군의 과반수에 근접한 병력으로 추산된다.

개신교 선교사로서 조선의 해안정찰과 통상교섭을 위해 온 귀츨라프(Karl Gutzlaff)는 그의 항해기에서 이렇게 썼다: “임진왜란 당시의 일본 장군들은 대개, 전부 그리고 사병들도 대부분이 역시 천주교인이었다.” 블린클리(F. Blinkely)는 부산에 상륙한 25만의 왜군 중 최소한 10% 이상이 천주교인, 즉 기시시단이었다고 『대영백과사전 일본인 역사』에서 기록하고 있다. … 그들의 잔학상이란 중세의 유럽 십자군보다 결코 덜하지 않았다. 그것을 압도했다.

1095년 11월 교황 우르반 2세는 광장의 대군중들에게 이렇게 연설했다. “이것은 내가 명하는 것이 아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명하는 것이다. 그 땅으로 가서 이교도와 싸워라. 설사 그곳에서 목숨을 잃는다 해도 너희의 죄를 완전히 용서받게 될 것이다. 신께 부여받은 권한으로 나는 여기서 분명히 약속한다.” 연설을 들은 사람들은 “신이 바라신다”는 말에서 교황 앞에 다투어 십자군으로 원정에 나설 것을 맹세했다. 그 전쟁은 3백 년이 넘는 전쟁으로 비화 되었고, 십자군의 창칼과 화살에 의해 무고한 인명이 수천만 명이 도살되듯 죽어야 했다. 십자군은 이교도의 여자는 물론 점령국의 젊은 여자들을 강제로 끌고 다니며 십자군의 성적 노리개인 종군 위안부 노릇을 하게 했는데 수만 명이 넘었다.

특히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정복하러 가는 도중에 도처에서 유대인 주거지를 습격해 대학살을 감행하였다. 후방에서도 신부들과 수도원의 수사들이 지휘한 도처의 대학살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여졌을 뿐 아니라 “유대인들을 죽여서 너의 영혼을 구하라. 그 공로로 너의 연옥에서의 기간을 줄여라”라는 표어까지 내걸어 가며 자행되었다. “이교도인 회교도로부터 성지(聖地)를 해방시켜야 한다면 그리스도를 죽인 자들(the Christ killer)을 먼저 처단해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군이 제1차 원정에서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을 때에는 예루살렘에 살던 모든 유대인들을 잡아 회당에 쓸어 넣고 불을 질러 몰살시켜 버렸던 것이다.

출처: 조중화 <다시 쓰는 임진왜란사>
부산 지하철 공사장에서 출토된 임진왜란 당시 피해자의 두개골

조선을 침략한 일본 십자군은 이 유럽 십자군의 악랄함을 능가했다. 왜군은 조선 땅에서 전쟁사에 보기 드문 야만적 죄악을 저질렀다. 진주성이 2차 전쟁에서 함락되자 일본 십자군은 성안에 남은 군·관·민 6만 명을 사창의 창고에 몰아넣고 모두 불태워 학살하였다. 왜병들은 조선 여자를 보기만 하면 길거리든 대낮이든 사람들이 보든 말든 닥치는 대로 강간했다. ‘욕봤다’는 말은 이때에 생긴 것이다. 나부끼는 R.C 십자가 깃발 아래서 귀베기와 코베기도 자행되었다. 조선을 침공한 왜군들은 병사 1명당 코 한 되씩의 책임량을 할당 받았다.

그리하여 남녀노유를 불문하고 코를 베었다. 조선인의 잘린 귀와 코는 소금에 절여 일본으로 보내졌다. 히데요시는 그것의 수량으로 부하들의 전공을 가늠했다. 천주교인 장수 구로다는 5,500개의 코를 벤 것으로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고니시와 다른 기리시단 장군들에 의한 코베기 숫자는 기록이 없다. 그렇다고 그들이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에 그런 만행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구로다가 그 증거이다. 되레 부산 전투에서 보인 살육과 방화 등 그 잔인성은 다른 부대의 왜군들과 다르지 않았다. 거의 모두가 카톨릭 신자로 이루어진 제1군의 고니시 부대, 일단 전쟁에 참여한 이상 이들의 행태는 다른 병사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전쟁은 전쟁일 뿐이었다. 일본인 저자 ‘가다노 쯔기오’가 쓴 [이순신과 히데요시]는 고니시 부대가 부산진성을 점령한 전쟁상황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출처: 조중화 <다시 쓰는 임진왜란사>

고니시의 부대는 줄곧 큰 깃발을 앞세우고 있었다. 붉은 천에 흰 글씨로 십자가가 그려진 깃발이었다 – 칼의 노래. 김훈

한국은 여전히 천주교(예수회)의 침략을 받고 있다는 관점이 존재한다.

공산주의든 나치든 전체주의 운동이 일어나면 예수회 신부가 그 지도자의 고문(顧問)역에서 발견된다. 쿠바의 카스트로의 고문은 알만도 로렌테 신부였다.
– 임마누엘 조셉슨. 『루즈벨트의 공산주의 성명서 Roosevelt’s Communist Manifesto』

좌빨교황은 시진핑의 일대일로라는 망상을 지지하고 나섰다

예수회 사제로 교황이 된 프란치스코가, 대한민국의 중심이며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서 있는 광화문 광장에서 1백만 명이 운집하여 모든 언론과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카톨릭 종교를 신봉하다 죽임을 당한 자들에 대한 시복미사를 거행한 것은, 임진왜란 때 카톨릭 군대가 점령을 실패한 보복임과 동시에, 권력자들을 개종시켜 그들의 힘으로 한국인들을 교황 로마 카톨릭교로 전향하게 하려는 예수회식 선교전략

http://hl4lt.tistory.com/ (zion church)
카톨릭 예수회가 설립한 서강대학교 출신 박근혜는 시진핑을 지원하는 좌빨교황 프란치스코란 작자를 버선발로 맞이했다. 박근혜는 젊은 시절 세례를 받았을 정도로 천주교와 가까왔다. 이후 그녀는 종교가 없다고 했다.

박근혜 탄핵과 이후 정세에 대한 해석  

결국은 일본으로 귀결되는 문제

박근혜는 좃불시위의 한복판에서 정규재와 인터뷰하며 오래 전부터 어떤 세력에 의해 탄핵이 준비되었던 걸로 본다고 말했다. 인드라의 국제유태자본론 등의 음모론이 주목하는 2015년 서울에서 열린 삼각위원회에 박근혜는 참가하지 못했거나 혹은 참가하지 않았다. 이 회합에는 중앙일보 사장 홍석현이 참가 한 걸로 알려져 있다. 삼각위원회에 대한 신문기사가 많이 존재하나 개인 블로그의 보다 음모론스러운 내용을 살펴보자.

삼각위원회(Trilateral Commission)는 막스주의자 브레진스키에 의하여 창설되고 데이비드 록펠러를 총괄 설립자로 세운 단체로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신세계질서를 만들기 위한 정치, 경제, 정책을 총괄적으로 조율하는 기관이다. 이는 미국, 영국, 일본 등이 모여 세계화를 추진하는 기구이며 현재 이 모임의 회원에는 세계적인 Power그룹이 속해 있다. 삼각위원회의 삼각은 미국, 유럽, 일본을 말하며 세계경제를 독점하고 세계정부를 세우기 위한 조직이다. 삼각위원회는 1972년 7월 1일 데이비드 록펠러(CFR 회장)의 후원으로 록펠러 저택에서 조직되었다. 빌드버그 회의와 CFR이 설립을 지원했고, 록펠러가 회장에 추대되었으며, 총 회원은 300명이다. 삼각위원회는 뉴욕, 파리, 도쿄에 본부를 두고 있고, 9개월마다 35명으로 구성된 집행협의회를 통해 운영된다. 운영자금은 주로 록펠러 재단이나 엑슨, 텍사스 인스투르먼트, GM 등에서 지원받는다. 이들은 정기간행물을 발행하지만, 실제로는 다국적 은행가와 기업 엘리트들이 세계정부를 세우기 위한 정책을 세운다.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7Iog&articleno=5751023&categoryId=18&regdt=20160831040633

삼각위원회와 관련해 최근에 더 알려진 사실과 그에 따른 해석들은 다음과 같다.

  • 삼각위원회는 중국인이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훨씬 많은 다수의 일본인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사실은 그들이 현재 적어도 친중이라 보기 힘들다는 점을 말해준다. (2015년의 참석자는 공개되지 않았다)
  • 삼각위원회의 정체와 역할을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시기상 박근혜 탄핵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음모론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가령 남미에서 나비가 날면 북경에 비가 내린다는 복잡계 이론을 적용해 보자)
  • 삼각위원회 위원 홍석현은 정치지도자가 되기에는 대중적 인지도가 거의 없던 인물이었으나 대통령을 꿈 꾸었으며 이 시기 미국에서 대통령이 되기 위한 기름부음이라는 종교의식 까지 행했다 전해진다. 비판자들은 홍석현이 대통령이 되려는 몽상에 젖어 JTBC를 이용해 박근혜 탄핵을 주도했다고 말한다. (정황이 그렇다는 의혹이지만 증거는 없다)

다음의 국제정치의 발언, 행동, 이미지들을 시간상으로 살펴 보자

  1. 2013년 미국 민주당의 힐러리는 한반도 사드배치론을 꺼냈다
  2. 중도 좌파라 평가 받는 유승민은 공개적으로 사드 배치를 주문했다
  3. 박근혜는 시진핑과 망루에 오르는 것으로 친중을 보여줬고 미국은 반발했다
  4. 미국은 한반도 통일 후 중국이 동북아의 주도권을 쥐는 걸 원치 않는다
  5. 박근혜는 사드 배치를 밀어 붙였고 중국은 이에 광분했다
  6. 미국은 친중-친교황 오바마 편인 힐러리 대신 미국의 국익을 외친 트럼프를 대통령에 세웠다
  7. 문재인은 사드에 반대하는 친중국 좃불시위를 주도했다
  8. 좃불시위에는 중국인들과 일본 공산주의자들이 참가했다
  9.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대만과 함께 반중국 정책을 펼쳤다
  10. 일본과도 긴밀히 손을 잡았으나 하와이를 먼저 들러 일본은 미국을 침략한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인식을 보여줬다
  11. 트럼프 정부는 2018년 봄, 북한과의 막후 협상을 공개했고 미국 민주당은 북한에 대해 강경 발언을 내놓았다

이상의 것들에 삼각위원회 해석을 더해 보면 2018년 상반기 한반도의 정세를 다음과 같이 생각 해 볼 수 있다.

삼각위원회가 박근혜 탄핵에 영향을 미쳤다면, 홍석현과 일본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된다. 박근혜는 시기상으로 삼각위원회라는 미국-일본 연맹, 그에 반대인 중국의 공공의 적이 된 것이다. 그러나 사드에 반발한 친중 문재인 정권은 중국에 도움이 된다. 때문에 일본은 그들 입장에서 삼각위원회를 통해 올바른 전략을 개진한 것인가란 의문이 발생한다. 일본은 보다 장기적으로 미국이 중국을 먼저 제압하고 그 빈자리를 일본이 차지 하는 것을 바란 것이었다고 생각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전략이란 그만한 불안정성을 내포한다. 2015년 참석자가 공개되지 않은 사실로 부터 다수의 중국인사가 참가 했을 가능성을 열어 둘 수 있고, 그렇다면 일본과 중국은 뒤로 손을 잡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박근혜가 그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을 특별한 이유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박근혜는 세수를 확충하는 좌파 정책을 펼쳤다. 결과적으로 박근혜는 한국 내부에서 문재인과 종북 주사파들, 그들과 공모하는 우파의 공조에 의해 끌어 내려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상의 전개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는 미국이 정당성을 얻는 방법은 북폭이 유일한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북폭이 아닌 북한 내부 구데타를 지원하는 것으로는 2차 대전 이후 한반도 분할의 책임의 일부가 있는 미국으로서 통일 한국에서 그만한 명분과 실리를 챙길 수 없다. 하지만 미국은 역사적 부채 청산과 정당성을 선택하는 대신 평화쇼의 일원이 되는 것도 가능하다. 이 경우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통해 우회하는 방법으로 한국에 영행력을 행사하는 모양새를 유지해야 한다. 그들의 실리와는 달리 폼은 그다지 나지 않을 것이지만 그들은 그것을 감수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사실과 의혹으로 부터 내릴 수 있는 판단은 다음과 같다. 일본과 만나는 문재인에 비해 재임기간 내내 일본을 철저히 배격한 박근혜는 친일파의 의혹이 그만큼 적다는 것. 여기서 친일파란 일제시대 친일이 아닌 현재 일본에 도움이 되는 모양새를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에 대해, 인간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으나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갖추지 못한, 동물 보다 못한 저열한 족속이라는 역사적 관점을 기억하도록 하자.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해야 한다
– 징비록 (서애 유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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