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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라는 장르의 완성

카라 1집, 넘쳐나는 클리셰의 대실패

카라의 1집 앨범 ‘The First Bloooooming’엔 유명 작곡가들이 의욕적으로 참여했다. 한상원, YG 엔터테인먼트의 빅뱅과 같은 예명으로 알려진 작곡가 방승철 등이 그들이었다. 카라는 흔치 않게 힙합과 펑크 스타일을 가진 여성 아이돌 그룹을 표방했다. 타이틀 곡 ‘Break It’ 은 당시 메인보컬 김성희의 성량과 파워를 최대한 활용한 곡이었는데 김성희의 쩌렁쩌렁한 목소리 외에는 어떤 것도 흥미 있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중들은 이 안일한 기획의 평범한 곡을 외면했다.

1집에서 멤버들의 매력이 조화를 이룬 곡은 ‘맘에 들면’ 이었다. 사랑스럽고 아기자기한 여자 아이돌의 힙합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이 곡은 특히 니콜과 한승연의 영어랩이 인상적인데, 그것이 영어이기 때문에 좀 더 본토의 것처럼 들린다는 장점 외에도 향후 대중이 발견할 카라스러운 귀여움과 앙증맞음의 일부를 라임과 플로우로 들려줬다. 니콜과 한승연은 이후에도 꾸준히 랩을 만드는데 참여 했다. 이후 Lupin의 도입부분에서도 발견되는 니콜의 영어 어휘는 상당히 센스있고 고급스럽다. ‘맘에 들면’의 훌륭한 영어 랩 가사는 다음과 같다.

oh, uh huh, yeah, let’s go
Time to stop tryna calculate you making me frustrate
is time to just trust fate yanno theres nothing to hesitate
call me baby, call me honey, call me sweetie, yo!
I’m digging everything I’m sensing from the vibes off you
Oh is this f’real
Take a look at me I am waiting for you waiting
for your leading me to love without cliche
boy oh boy don’t you know
Chances pass day by day so step up before they fly away

여기서 ‘클리셰’란 단어가 발견된다. ‘클리셰 없이, 날 사랑해 주길 기다린다’는 니콜의 라임으로 부터, ‘온갖 클리셰들을 끌어 모은 아이돌 음악의 진정성’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가 카라의 이야기를 읽는 키다.

‘맘에 들면’은 이후 2NE1 등 힙합을 본질이라 하는 아이돌이 탄생한 이후에도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힙합 감각이 녹아든 수작이었다. 하지만 대중의 인기를 얻기엔 다른 곡들은 ‘Break It’과 같이 너무 평이한 클리셰들을 남발한 것들이었고, ‘맘에 들면’ 처럼 균질하게 실험적이지도 않았다. 생경한 힙합 소녀들인 카라는 크게 조명 받지 못했다.

기나긴 무명 시절, 팬덤, 트리비아의 서사

데뷔 후 오랫동안 카라는 스케쥴이 많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했다. 이런 와중에 카라의 티비 조차 없는 숙소가 YTN 스타투데이 영상을 통해 공개 되었다.

1집 활동을 접은 카라가 1년 가까이 개점휴업인 반면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는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그들의 세상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 시기 팬미팅은 주로 길거리 공사장 옆, 보도 블럭 위에서 이루어졌고 카라의 팬들은 돈을 모아 간식을 사먹었다고 전해진다. 이 시기 카라는 지하철을 타고 스케쥴을 소화하기도 했다.

초기 카라의 메인 보컬이던 김성희는 데뷔 1년만인 2008년 2월 학업과 부모의 반대로 팀을 떠났다.

그 이전 부터 쓰러져 가는 팀을 일으키고자 분투하던 한승연은 작지만 충실한 소수의 팬을 가지고 있었다. 이 팬들은 후일 온라인 공간에 카라의 성공스토리를 만들어 올리며 카라의 성장의 기쁨을 함께 누렸다.

카라의 팬들은 그녀들이 2007년 연말 가요 시상식에 초대받지 못했을 때, 한승연이 차디찬 숙소에서 비빔면 두개를 끓여 먹으며 눈물을 흘렸노라고 밝힌 것을 인터넷 게시판 마다 실어 날랐다.

당시 오디션 참가가 중 싸인 씨디를 준다는 내용이 있다

카라의 팬들은 한승연이 1주일에 한번 MC로 출연한 MBC Game 채널에서 “한승연의 MSL Break”를 외치는 장면을 착실히 캡쳐해 마르고 닳도록 반복 시청했다.

그러던 2008년 4월 한승연,니콜,박규리 세사람은 직접 오디션 공고 동영상에 출연해 다섯명의 팀으로 거듭날 것임을 예고했으나 관심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오디션을 통해 구하라와 강지영이 합류 한 후에도 한승연은 소녀시대 티파니가 빠진 KMTV ‘소년소녀 가요백서’에 약간은 비굴한 컨셉으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이런 힘든 시간들을 통해 서서히 팬덤이 자라났다.

큐트 컨셉 – 카라표 팝의 시작

그리고 2008년 7월 24일 한승연의 생일날. 1집 발매 이후 거의 1년 반만에 1집의 귀여운 힙합 소녀들과는 전혀 다른 컨셉으로 카라는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첫 미니앨범의 동명 타이틀 곡 ‘Rock U’는 ‘Rock U Body I Say’라는 특이한 후렴을 반복하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제외하곤 대중들은 이 귀여운 생명체들에게 아직 본격적으로 환호하지 않았다.

그들의 컨셉은 10년 전의 것인 듯 너무 유치해 보였다. 카라 자신들도 무대 위에서 구시대의 이미지를 연출해야 하는 걸 약간은 난감해 하는 듯 보였다.

구하라는 첫 방송 무대에서 실수를 한 후 화장실로 가 울었다고 전해지며 이것이 보도되어 관심을 끌었다. 이후 가요프로그램의 차트 10위내에 처음 진입한 뒤 대구의 한 카페를 빌려 열린 카라의 팬미팅 참석 인원은 2백명을 넘었다. 카라의 구멤버와 새로운 멤버 사이의 갈등은 없었다. 카라의 다섯명은 1집의‘맘에 들면’을 노래방에서 신나게 부르는 모습을 공개하며 우애를 과시했다.

뚜렷이 희망의 빛이 보였지만 아직 카라는 갈길이 멀었다. 소녀시대는 2008년 1월 뛰어난 1집을 들고 나타나 카라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이후 원더걸스와 길고 긴 한판 승부를 치렀다. 한승연은 또다시 MBCevery1의 ‘가족이 필요해 시즌2’에 ‘유명하지 않은 아이돌 컨셉’으로 울며 겨자 먹기로 출연했다. 후일 한승연은 SBS ‘강심장’에 출연해 정상의 위치에서 이때를 회상하며 눈물을 보였다.

카라의 유아스런 안무와 패션,의미를 알 수 없는 락큐빠세(Rock Your Body, I Say)는 이미 한껏 수준 높은 소녀시대에 매료된 리스너들에겐 귀찮지만 끈질기게 뇌리에 남는 후크였다. 평론은 참다 참다 카라가 고루하고 유치스럽다며 한마디 했다. 평론은 물론 대부분의 대중은 아직 카라의 후크가 얼마나 중독적인지, 한승수와 김재호의 쌓아 올린 전략이 얼마나 견고한 것인지 모르고 있었다. 최초의 간증은 유희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루어졌다.

평론 혹은 간증

최초의 간증은 유희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루어졌다. 이지형과 신재평(페퍼톤스)은 유희열의 라디오 방송에서 카라의 ‘Rock U’에 대해 거의 광분한 상태로 곡의 구조와 시퀀싱 기법 등 뛰어난 난이도로 만들어 졌다고 높게 평가했다. 이후에도 유희열은 스케치북에서 카라를 지목했는데 그건 웃고 즐길 신문기사를 제공한 것만은 아니었음에도 아직 대부분의 대중들은 카라를 소녀시대의 90년대 버전 쯤으로 여겼다.

시간이 꽤 지난 그해 12월, 카라는 연말 가요시상식 참가를 겨냥한 듯 두번째 미니앨범을 발표했다. 카라의 팬들은 카라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순위프로그램에서 단체로 고무장갑을 낀채 응원했고 이를 언론이 기사화되었다. 김아중이 부른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홍보곡 ‘I am a beautiful girl’를 연상시키는 타이틀 곡 ‘Pretty Girl’은 큰 인기를 끌었다. 평론은 이전 보다 빠르게 약간은 호의의 여지를 남겨주는 방식으로 거의 즉시 반응했다.

그런 평론이 있던 크리스마스날에 ‘소년소녀 가요백서’에 출연한 니콜과 구하라는 ‘숙소에 케이블이 안 나온다’란 말을 남겨 팬들을 놀라게 했다. 간신히 숙소에 티비는 마련되었으나 어느 가정에나 상수도처럼 연결 되어있는 케이블은 그녀들에게 공급되지 않았던 것이다. ‘Pretty Girl’은 가요프로그램에서 2위까지 올랐다. 카라의 스케쥴은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각종 행사, 축제, 라디오와 케이블, 공중파에서 카라를 볼 수 있었다.

2009년 2월 초, 카라는 팬들의 요청에 의해, 미니앨범 ‘Pretty Girl’에 실린 ‘Honey’로 순위 프로그램에 다시 나섰다. 그리고 소녀시대가 ‘GEE’ 로 9주 1위의 전설을 끝내던 3월8일, 마침내 한승연은 인기가요에서 1위 트로피를 안고 엉엉 울었다. 소녀시대도 이런 카라를 옆에서 다독였다. 이 무렵 카라는 태국의 아시아팝송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09년 3월 서울 광운대 대강당에서는 참가자 2000명이 넘는 카라 팬미팅이 개최 되었다.

카라는 2009년 5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윤하의 깜짝 게스트로 출연했다. 유희열은 인생에서 가장 기쁜 날이라 했고 그건 진심으로 들렸다. 유희열은 이 시기 부터 감성변태 이미지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원더걸스 인 원더월드에서 밝힌 마크PD와는 좀 다른 삼촌팬의 자아다. 윤하는 자신의 앨범(1.5집) Thanks to에 한승연을 ‘승연자기’라 부를 정도로 한승연과 절친이라 알려졌고 이 취향을 즐기는 여성팬들은 작게 환호했다.

퍼스낼러티, 캐릭터의 밸런스

일본의 인기 개그맨 이자 배우, 작가이기도 한 게키단 히토리(劇団ひとり)는 2009년 하반기 부터 일본에 카라를 알려왔다. 그는 DSP를 직접 방문했고, 자신의 TV프로에서 고정적으로 카라를 홍보했다. 소녀시대에 비해 일본 내 인지도가 부족했던 카라는 마치 한편의 잘 짜여진 드라마 처럼 일본에 진출할 수 있었다. 게키단 히토리는 업계의 음모론 따위는 말도 안되는 것이라 일축하고 이후에도 단순한 팬으로서 열심히 카라를 응원하고 있다. 그는 한 연예정보 프로그램에 출연해 카라는 멤버 한사람 한사람이 명확한 캐릭터를 갖고 있고 이들의 조합은 흡사 전대물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하며 카라는 최고의 아이돌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한승연의 분투 이후 아이돌로서의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 기회는 니콜에게 먼저 찾아왔다. 토요일 골든 시간대인 오후 5시에 방영된 ‘스타골든벨’에 2008년 12월부터 방영된 ‘눈높이를 맞춰요 시즌2’에 출연한 니콜은 부족한 한국어 실력으로 단어를 설명하며 재미있는 상상력을 가진 친근한 캐릭터로 자리잡았다. 십장생이란 단어를 설명하며 ‘열장을 다른말로 하고 태어나는 것’과 같은 식이었다. 국민들은 열광하며 이후 10개월 이상 니콜과의 주말 시간을 기다렸다. 시청률 제조기란 별명을 얻은 니콜은 이후 다른 멤버들이 ‘카라베이커리’에 출연할 당시 ‘니콜의 수의학 개론’에 단독 출연했다.

구하라에게 처음 찾아 온 기회는 2009년 1월 출연한 설특집’스타격투기쇼’였다. 당시 주얼리의 김은정과 맞붙은 구하라는 여린 외모와는 달리 정확히 눈을뜨고 펀치를 날렸으며 이를 악무는 모습의 캡쳐로 ‘구슬란 하라예프’,‘바다하라’한 별명을 얻는다. 이 캡쳐는 이후 구하라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게 됐다.

구하라는 곧바로 찾아온 구설수에 시달렸다. 구하라가 데뷔전 남자친구와 단둘이 펜션에 놀러 갔다는 소문이 퍼졌는데 DSP 엔터테인먼트는 극구 사실무근임을 밝혔고 리더 박규리는 미니홈피를 통해 구하라에겐 문제가 없다고 항변했다. 후일 한 연예 전문기자는 구하라와 함께 출연한 방송에서 그녀가 인기아이돌로 부상하는 가운데도 근거 없는 구설수로 오랜 기간 마음고생을 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구하라에게 두 번째의 기회는 2009년 10월 초 찾아 온 MBC ‘달콤한 걸‘의 100M 달리기였다. 초등학교 시절 2년간 육상부생활 경험이 있던 구하라는 안정된 주법으로 다른 여자 아이돌들 사이를 엄청난 스피드로 치고 나왔고 이에 카라의 팬들은 ’구사인볼트‘란 별명을 붙여 주었다. 언론들은 이후 2010년 명절 특집 연예인 게임 프로그램에 구하라가 출연하지 않자 김이 빠졌다고 할 만큼 구사인볼트라는 캐릭터는 굳건히 형성되었다.

2009년 10월부터 2010년 12월 까지 방영된 ‘청춘불패’는 다른 여자아이돌은 물론 구하라와 구하라가 속한 카라를 국민아이돌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구하라는 이제는 전국민에게 익숙한 하라구란 애칭을 얻었다. 방송이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아 ‘청춘불패’ 멤버들은 할머니와 전화통화를 할 기회가 생겼는데 이 방송을 통해 구하라는 어린 시절을 광주에서 할머니 품에서 자란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2011년 초 카라의 해체 소동의 와중에 구하라는 고모할머니(외할머니) 상을 당했으며 DSP미디어의 관계자는 구하라가 가족이 많지 않아 더 힘들어 한다고 밝힌바 있다. 구하라의 가족관계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청춘불패’에서 구하라는 밝고 웃음이 많았고, 소탈하며 순수하고 모습을 보여주었다. 구하라와 현아의 콤비 개그는 큰 인기를 끌었다.

박규리는 그리스어 CHARA로부터 달콤한 멜로디라는 뜻의 KARA의 팀명을 직접 만들었다.

박규리의 팬들은 그녀를 여신으로 불렀다. 박규리도 스스럼 없이 그럼 나는 여신이라며 스스로를 여신으로 불렀다. 이렇게 어디에도 없는 사상 최고의 희한한 캐릭터가 탄생했다.

2009년 12월, SBS ‘절친노트’엔 당시 DSP의 가족이었던 SS501과 카라가 함께 출연했다. 카라 멤버와 SS501의 캐릭터 다이나믹스가 돋보이는 흔치 않은 이 자리에서 박규리는 코믹한 자뻑 여신 컨셉으로 좌중을 웃겼다. S501의 해체 후 가장 아쉬운 것은 SM과 JYP등 다른 기획사의 남매 관계들에 비해 가장 어울리는 하모니를 보여 준 카라와 SS501을 한자리에서 다시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2010년 1월3일, MBC ‘놀러와’에선 소녀시대와 카라만으로 한시간을 채운 새해 특집 방송이 편성됐다. 다같이 개그에 소질이 있는 쟁쟁한 아이돌 가운데서 이날의 주역은 단연 박규리였다. 박규리는 일관된 뻔뻔한 여신 컨셉으로 다른 모든 출연자들을 웃기고 분위기를 이끌었다.

박규리는 2009년 중반부터 심심찮게 라디오 1일 Dj로 활동했다. 2010년 5월 박규리는 김신영이 빠진 MBC 표준 FM ‘심심타파’에 발탁되어 슈퍼주니어의 신동과 더블 DJ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일본 진출과 뮤지컬 일정이 겹치며 눈물로 마감했다 .

박규리는 2011년 초 불거진 카라의 해체소동 때 투병중인 DSP Media의 이호연 사장 옆을 지키며 카라멤버들을 규합할 터전을 마련했고 이후 진행된 상황에서도 멤버들을 모을 수 있는 중심역할을 해 내며 진정한 리더쉽을 갖춘 최고의 아이돌 리더로 발돋움했다. 이후 너무 많은 스케쥴을 소화하느라 성대 수술을 받기도 했던 그녀는 게키단 히토리의 말을 빌리면 아이돌에는 흔치 않은 지적인 이미지 까지 더해 여신으로서의 품위라는 캐릭터를 스스로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강지영은 데뷔 시절 그녀의 고향인 경기도 파주에서 유명했다는 구설수에 올라야 했는데 파주의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무학여고에 입학하며 방송활동 외엔 착하고 성실한 모습을 보인다는 선생님과 친구들의 증언이 이어졌고 강지영 스스로가 ‘라디오스타’에 출연 해 그런 그룹에 속해 있었던 건 사실이라고 실토하므로써 이 문제는 일단락 되었다.

박규리를 비롯한 카라의 멤버들은 막내 강지영을 귀여워했고 강지영은 가끔 언니들에게 애교를 떨어 줘야 한다고 밝혔다. 일본에서 강지영은 일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현역여고생’임을 내세웠다. 강지영은 F/X의 설리와 동갑이자 절친임을 자주 과시했다. 이 둘은 키는 큰데 아기같이 귀여운 얼굴로 인해 자이언트 베이비라는 별명을 얻었다. 강지영은 정상의 인기를 얻은 여자 아이돌 중에서도 가장 어린 편에 속해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한승연은 그녀의 고군부투로 독햄(독한 햄스터)라는 별명을 얻은지 오래였다. 카라 역사의 일부는 한승연의 성공기라 부를 만큼 그녀는 전투적인 자세로 아이돌 활동에 임했다. 해외유학 중 연예활동을 위해 귀국한 그녀의 명석한 두뇌와 집념은 팬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다.

그녀의 아버지인 정종철은 국내에서 손가락으로 꼽히는 도검장인으로 한승연에게 선사한 백접도가 티비에 소개되었다.

2010년 5월 열린 드림 콘서트엔 숱한 아이돌 스타가 출연했는데 다음날 인터넷의 보도사진은 모두 ‘Lupin’을 부르고 있는 한승연의 것이었다. ‘특별하길 원하니? 네 것 이길 바라니? 시작해, 높이 올라가, 세상을 다 가져봐’라는 lupin의 가사는 그녀 스스로 이룬 자신의 것이었다. 한승연은 그렇게 바닥부터 시작해 꿈을 이뤄 정상에 선다는 아이돌 성공시대의 드라마를 증명해 냈다.

한국적 캐릭터 다이나믹스, 치유의 아이돌

일본에 진출한 이후 아직 일본 대지진이 있기 전 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한승연은 ‘강지영과 함께 퇴근길의 지하철역 앞으로 일부러 나가자고 해 사람들을 구경했다. 다들 바빠 보였다’는 종교성과 문학성이 엿보이는 특이한 멘트를 했다.

또한 카라는 앨범수익금을 구호기금으로 내놓기도 했으며 구하라는 특별히 성금을 기탁하기도 했다. 이런 측면은 카라를 지목한 게키단 히토리가 일본의 저명한 작가라는 점과 더불어 카라가 일본인의 의식 속에 치유의 아이돌로서 깊이 각인 되는 절차적 계기를 만들었다. 2012년의 첫 단독 콘서트인 ‘KARASIA’콘서트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여든 일본관객들은 치유의 아이돌이라며 카라를 좋아했다.

그 치유의 의미란 일본의 아이돌 혹은 아이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인성(퍼스낼러티)와 스킨쉽으로 드러나는 진짜 친숙함이 담긴 한국적 캐릭터 다이나믹스에서 발견 된다. 카라 멤버들은 카라사태에도 불구하고 모두 비지니스 관계를 넘어선 친구사이로 보여졌다.

카라시아에서 한승연은 솔로곡 ‘Guilty’를 선보였는데 이는 카라의 곡들이 가진 Rock 성향을 잘 나타내 준다. 한재호, 김승수로 이루어진 스윗튠은 자신의 팀은 베이스와 드럼 등은 직접 연주한다고 밝혔다. ‘KARASIA’ 콘서트에선 모든 곡이 더 헤비한 락 성향으로 편곡 되었다.

아이돌을 아티스트로 만든 KPOP 프로듀싱

카라는 경쟁자들 중 소녀시대, 언더걸스와 함께 다수의 정규앨범을 낸 흔치 않은 여자 아이돌 그룹이고 그 음악적 성과의 한 가운데에는 작곡가 한재호,김승수 컴비가 자리했다.

한재호,김승수는 2001년 첫 음반을 내고 해체한 밀크의 1집을 거쳐 다음해 핑클의 3집 이후 슈가, 서지영, SS501 등 수많은 아이돌의 앨범에 참여했지만 긴 시간 동안 뚜렷이 기억에 남는 발자취를 남기진 못했다.

이들은 결국 다시 걸그룹으로 돌아가 당시 막 무너지기 직전의 카라에 참여했고 그것은 전설의 시작 ‘1st Mini Album’ – ‘Rock U’가 되었다. 그리고 연이어 발표한 ‘Pretty Girl : 2nd Mini Album’에서 Pretty 3부작이랄 수 있는 -‘Pretty Girl’,’하니’를 성공시킨다.

한재호와 김승수는 많은 장르 중 왜 10여년 간 아이돌 음악에 매진 했던 걸까? 그 대답은 두 사람이 Sweetune이란 이름으로 참여한 아케이드 뮤직게임 DJMAX TECHMIKA에서 찾을 수 있다. 매니아적으로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는 할 수 없는 일이란 걸 보여준다.

‘큐트 3부작’의 유명세를 몰아간 카라는 2009년 7월 정규 2집 ‘Revolutuion’을 발표하며 비로소 비평의 대상에 오르기 시작했는데 그 비평들은 귀여움에서 섹시로 이행하는 걸그룹의 이미지 변신 외에 주목할만한 음악적 평가를 내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대중의 귀는 들을수록 피곤하게 만드는 길거리 휴대폰 판매점 스피커의 노래들 중에서도 ‘Wanna’와 ‘미스터’는 후크와 엉덩이 춤이라는 요소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찰기가 있다는 걸 끈질기게 기억해 냈다.

결국 ‘Wanna’와 ‘미스터’는 음악프로그램에서 내려 온 이후에도 가을과 겨울을 관통하며 다양한 행사와 음원을 통해 살아남았다. 2010년 초 카라의 첫 일본 팬 미팅을 앞 두고 일본 방송은 카라는 단순한 아이돌이 아닌 아티스트라 칭했다. 그리고 재미있는 시점에 인디 밴드 ‘와라써커스’는 ‘미스터’가 정교한 구조, 견고하고 클래식한 어법을 갖는 명곡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2010.02.12 와라써커스

‘와라써커스’가 공연을 한 날 카라는 제2집 ‘Revolution’의 시즌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상기시키며 세 번째 미니앨범 ‘Lupin’의 티저영상을 공개했다. ‘Lupin’은 마치 핑클의 전성기를 수 놓은 곡들을 되살리는 듯 뮤지컬적 구성, 현란한 스케일을 보여주었고 ‘Wanna’와 ‘미스터’가 우연이 아님을 증명했다.

일본은 카라가 수많은 명곡을 가지고 있다며 빠르게 반응했다. 카라의 음악적 표면은 아이돌의 크리셰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빠른 호흡의 유행과 평론적 강박을 떠난, 오래 들어야 수면으로 올라오는 진중함이 존재한다. 그건 반복되는 레트로가 불러일으키는 따뿐함과는 구분된다. 한재호,김승수와 카라가 만든 것은 오랜 무명을 거쳐 비로소 K-POP의 중심에 선 이른바 ’선수’들의 작품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Lupin’은 All Time Request의 장점을 갖는다는 걸 증명하며 2010년 여름 카라는 아이돌이라는 한계를 넘어 그들 방식의 음악적 진보(Revolution)로 선두에 섰다.

월드컵 방송권과 관련된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평론은 최초로 한재호,김승수와 카라를 언급하고 ‘We’re with you’의 손을 들어 주며 사실상의 월드컵 응원곡 싸움에서의 승리를 선언했다. 2010년 하반기 카라는 일본에 진출해 성공을 거둔 첫 한국 여성 아이돌이 되었다.

한국어 K-POP으로 일본을 물들이다

2010년 초 카라는 ‘미스터’를 일본어로 번안했고 이는 2년여가 넘는 기간 동안 공전의 대 히트를 기록했다.

카라는 역시 한재호, 김승수 컴비와 미니앨범 ‘Jumping’을 한국어와 일본어로 동시 발표했는데 이는 카라의 팬들이(일본 팬을 포함해) J-pop으로의 흡수,굴절이나 퇴행을 염려했던 것을 일거에 불식시켰다. ‘미스터’와 ‘jumping’이 실린 일본 정규앨범은 50만장 이상 판매되며 더블플래티넘을 기록했다.

발표하는 곡마다 일본을 들썩이게 하는 카라의 음악 특히 스윗튠 음악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해 일본의 한 TV 프로그램에서는 카라사태 진행 동안 스윗튠 두 사람을 초대해 몇가지 질문을 던졌는데, 일본음악을 좋아하느냐? 그렇다며 결국 일본음악이 토대가 아니냐는 유도질문에 두사람이 휘말린 사건이 발생했다. 스윗튠이 그렇게 일본 특유의 아전인수, 자존심 세우기에 이용되었으나 트위터를 통해 이는 편집의 잘못이라고 밝혔다.

카라의 일본에서의 히트곡 행진은 카라사태 동안에도 계속되었다. 3.11 재난과 카라사태로 어수선한 가운데 발표된 ‘Jet Coaster Love’는 드디어 카라와 만난 아이돌 음악의 神 황성제가 의욕적으로 일본시장을 겨냥해 만든 4월의 공기가 그대로 전해져 오는 명곡으로 발매 첫주에만 12만장 이상을 판매했다. 일본인들은 이 곡의 위험하리 만치 뛰어난 베이스 진행에 감탄했다. 일본방송은 카라가 대중성과 음악성을 두루 갖췄다고 했다.

여름을 겨냥한 시즌송 ‘Go Go Summer’은 스윗튠 만큼이나 카라와 오랫동안 함께한 한상원,김짜르트와 함께 작곡가 이상호가 가세해 만든 곡으로 23만장 이상을 팔아치우며 일본의 국민가요가 되었다. 쉽고 경쾌하지만 재즈,디스코, R&B, 락 등 대중음악으로서의 어법과 기본을 갖춘 어반팝은 이들 작곡가가 카라에게 끊임 없이 제공한 것이었다.

일본에서의 승승장구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기 국내팬들은 카라가 일본에 팔려간 현실을 자학하며 괴로워했다. 자신들의 곡이 아닌 두 개의 일본 빅 히트 송을 바라보며 스윗튠은 아이돌 음악으로 전세계를 호령하고 있는 K-POP의 본질적 질문에 답할 만할 것을 만들고 있었다. 동시에 그 곡은 스윗튠의 본질을 드러내야 하는 곡이어야했다.

공개와 동시에 ‘STEP’은 국내 전차트를 석권했고 이후 일본 벨소리 차트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반응은 미국에서도 날아왔다. 어메리칸 아이돌의 심사위원이자 저명한 연예 블로거인 Ryan Seacrest는 자신의 블로그에 ‘STEP’을 소개하며 이 곡이 성공적이지 않을 수 없다고 호평했다. 관련 주소는 다음과 같다.  아이돌은 이제 아시아를 너머 미국과 유럽으로까지 나아갈 기세였다. 애초부터 일본팬들도 카라가 일본에 머물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STEP’은 카라의 유투브 비디오 중 약 6,000만회를 기록하며 전세계로 카라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일본에서 ‘STEP’은 먼저 해외앨범으로 1위에 올랐다. 일본 팬들은 일본앨범에 정식 발표되지도 않은 ‘STEP’을 항상 목말라했고 시간이 지난 후 ‘STEP’은 일본 정규앨범에 포함되었다.

‘STEP’은 락의 구조에 복고 디스크 어법을 얹고 최신의 다양한 조류의 사운드적 흐름을 반영했다. ‘Step’은 오랜 기간, 자세히 들을 수록 발견되는 스윗튠식 아이돌 음악의 결정판이면서 K-Pop이라는 단어의 특징을 그 당시 가장 확연하게 드러낸 곡이었다. 무엇보다 ‘STEP’은 한국어 가사 그대로인 노래로 일본 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둔 첫 K-POP 으로 자리잡았다.

카라표 팝

카라의 팬들에게 미니앨범 4집이 무엇보다 반가운 점은 1집의 ’맘에 들면’을 떠올릴 수 있는 귀여운 힙합 넘버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카라는 힙합으로 시작했고 한승연과 니콜의 능력 역시 힙합에 뿌리를 가지고 있다. 언젠가는 카라가 2NE1도 하지 못한 그들만의 힙합, 진화된 음악을 하길 바랜 팬들의 기다림에 약간의 반응을 보여준 일이 일어났다. 한승연은 홍대의 숱한 프리티 모던 락그룹의 리드싱어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이 영상은 네이버 오늘의 뮤직에도 올랐다.

아직 여름의 광풍이 채 식기 전인 그해 가을 카라는 이른 겨울 시즌송 ‘Winter Magic’으로 또 다시 일본 차트 정상에 올랐다.

이후 카라는 소녀시대와 비슷한 방법으로로 유럽 작곡가의 곡인 ‘Speed Up’으로 한면을 채우고 또 일본의 국민 아이돌에게나 어울릴 곡 ‘Girls’ Power’를 일본 작곡가에 받아 더블 싱글을 냈다.

그러나 카라는 앨범에서 늘 알려 지지 않은,  해외 팬들의 말로는 이지리스닝, 혹은 80년대 팝의 정수를 2010년대의 뛰어난 테크놀로지로 계승한 듯한 곡들을 빼곡이 채웠다. 버릴 곡이 하나도 없는 아이돌의 앨범. 그것이 바로 카라표 팝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너무 강한 솔로의 개성, KARASIA

2012년 봄 한승연이 제목을 붙인 카라시아(KARASIA) 콘서트가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대장정에 올랐다. 이 공연의 표를 구하기 위해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팬들 사이에선 대소동이 일어났다. 공연에서 무엇보다 눈에 띈 건 멤버 다섯명의 솔로곡이었다.

박규리는 ‘Lupin’과 같이 장대한 느낌의 스케일이 가미된 탱고 곡 ‘백일몽’을, 니콜은 성숙하면서 세련된 R&B 팝 ‘LOST’를, 구하라는 그녀의 이미지 처럼 상큼한 댄스곡 ‘Secret Love’를, 한승연은 ‘Lupin’의 이야기를 온전히 개인화 시킨 것 같은 처절한 느낌의 락 넘버 ‘Guilty’를, 그리고 그 귀여움을 어디에 적용 시킬지 의문이었던 강지영은 모던락 넘버 ‘Wanna Do’를 불렀다.

팬들은 이 곡들이 하나 하나 당장 차트를 올킬할 만한 곡들이라며 흥분했다. 다시 클리셰에 대해 말해보면 카라의 음악은 아이돌 음악이 섭취할 수 있는 어른들의 세련된 클리셰를 모방하여 점차 진심을 전하는데 가 닿게 되었다고 밖에 말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카라는 스스로 그룹의 존폐위기로 부터 ‘생계형아이돌’이라는 터널을 거치며 여신이 되었고 그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의 유명세로만 일궈낸 것은 아니었다. 카라는 얼핏 일본 아이돌이 한 방식과 비슷한 길을 걸어왔지만 그들의 음악은 이미 일본 아이돌이 한 것을 애저녁에 질적으로 초과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성공을 넘어선 아시아의 치유의 아이돌로 자리매김했다. 그건 고스란히 그들 열정의 산물이었다.

2013년 1월 카라는 국내 여자 아이도 중 최초로 도쿄돔 콘서트를 열었다.

탈퇴, 재건, 그리고 카라라는 장르의 완성

2014년 초 니콜과 강지영은 카라를 탈퇴했다. DSP는 두 멤버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새로운 카라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허영지를 선발해 카라의 새 앨범을 발표했다.

‘Day & Night’에 스윗튠은 온데 간데 없었다. 그런데 카라는 마치 스윗튠이 작곡한 것 같은 음악들을 들고 나왔다. 이제 대중들은 알게 됐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건 스윗튠의 음악이 아니라 카라의 음악이었음을. 그것이 보컬 밸런스이건 춤이건 카라는 음악과 춤에서 정점의 스타일을 만들어낸 흔치 않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니콜이라는 탁월한 랩퍼 겸 댄서가 없는 카라는 폭발적인 무대를 보여 주진 못했다. 니콜은 2014년 11월 DSP 출신 연예인들의 집합처와 같은 B2M 엔터테인먼트에서 스윗튠의 곡들로 채워진 미니앨범을 내놓았는데 그 곡들은 카라의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것들이었다.  니콜과 카라는 그렇게 서로 떨어진 상태에서 카라표 팝을 완성했다.  그러나 무대와 대중은 그들 모두에게서 어색한 결락을 발견했다.  허영지는 강지영과 니콜의 빈자리를 채운 것이 아니라 새로운 체제를 만들었지만 음악적으로 그 영향은 크지 않았다. 카라라는 장르의 완결성은 제시카가 함께 했던 소녀시대 1집이 남긴 유산의 무게와 비슷하다.  카라가 포함된 KPOP의 2세대 아이돌들은 아티스트가 곧 장르가 되어 버린 위대한 일을 해 냈다.

Juno

한국표준협회 경쟁력향상센터 수석전문위원 nahojun@sod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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