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 유투버 중 한명인 뱅모(박성현)은 화엄적 세계관에 대해 언급하는 거의 유일한 유명인이다. 작금의 좌파와 우파에 대한 그의 이지적 분석과 분류는 거의 정확한데, 그의 우파를 위한 활동에 있어서 만큼은 그가 한 때 몸담았다고 밝힌 좌파의 방법 혹은 지극히 한국적인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여진다.

단체나 협회등을 만들어 사람들을 모으고 조직하는 일이란, 기본적으로 정치적 행동을 매우 좋아하며 그것을 즐기기까지 하는 한국적 방식이다. 이는 해방 후 경쟁적으로 서로 쑥덕대며 당을 만들던 서울의 모습과 겹쳐진다.

한국인들은, 부정부패가 횡행하던 조선시대 귀족 붕당 마피아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현대에 들어서도 눈앞의 이익을 쫒아 부나방 처럼 몰려드는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저열한 욕망을 포섭하는 방식은 맑은 물을 담아 낼 수 없다.

뱅모는 전근대적 Ego를 넘어선 근현대적 자아로서의 Self를 얘기한다. 박성현의 언어들이 너무나 급박하게 조직하는 그 자아(Self)는, 주체사상의 주체와 마찬가지로, 획득할 수 없다. 아니 획득의 대상이 아니다. 화엄적 세계에서의 자아란 인드라망이라는 생명(=원효의 一心)의 네트워크에서 일시적으로 필요에 의해(Ad Hoc), 보이지 않는 무아(無我)의 상태로부터 현시되는 세계의 자아로 현상계에 점멸하는 것이며, 하위 설명차원에서 생각하는 것과 같은 식의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하향적 설명 수준의 해석과 본원적 실재에는 상당한 갭이 존재한다.

주체사상의 주체란 단순한 ego인데 이는 환상이며, 자기기만의 거짓이고, 공생성이 없고, 비윤리적인 개소리여서 획득할 수 없다.

낮은 계에서 관측되는 일반적인 정치를 거부하며, 책임과 권한을 갖는, 생명의 원리를 간극 없이 절대화한 창발적 진화로서의 개인(self)을 거부하는 전체주의와 파시즘은 화엄적 우주를 만들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그 좀비들은 그 수가 아무리 많더라도 터진 둑에 개미떼 처럼 쓸려 갈 수 밖에 없다. 즉 쪽수가 제아무리 많아도 단 한 사람이 체화한 진리로서의 道를 이겨 낼 수 없다. 4차산업혁명의 시대에 들어선 한국에서 현실은 그 쪽수까지 별로 밀리지 않고 있다. 게다가 다시 말하지만 화엄적 세계를 이루는 무아적 자아(self)란 상존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진리의 체상용을 언어로 말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전혀 이타적이지 않은 주사파 같은 양아치며 파시스트들이 대한민국의 정권을 잡았는가, 그 반대편이라 자처하는 기존의 우파 역시 왜 그다지도 똑같은 귀족주의 마피아 파시스트들인가 하는 의문이 발생한다. 중생들은 길 없는 길을 걷는 사람들과 달리 스스로 비판적이고 이성적인 생각을 할 능력이 없어 겪어봐야 알고 배우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여러 층위의 현실과는 상관 없이 가장 저열한 욕구를 포섭해야 하는 무대가 정치다.

시스템의 진화에는 항상 캐즘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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