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를 통해 보는 인간 의식의 진화와 대한민국 파시즘의 극복

한국에서 한나 아렌트를 오독없이 제대로 읽었거나 이해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희귀한 경험에 속한다. 지식인 행세는 해야 하니까 이해하지 못한 채로 무슨 일만 나면 여기저기 짜깁기로 가져다 붙여 쓴다.

2010년대에 한나 아렌트를 다룬 영화와 다큐멘터리가 발표되었다. 대한민국 지식인들과 언론은 이에 대해 일제히 아가리를 처 닫았다. 이유인즉슨 대한민국에 서식하는 좌빨들은 오랜시간 한나 아렌트를 권위주의 정권의 치료제로 인용하고자 노력해왔으나 한나 아렌트는 그것과는 아무 상관 없는 파시즘을 연구했을 뿐이기 때문이었다.

한나 아렌트를 단순한 도덕론자로 보는 어처구니 없는 시선 또한 존재한다. 한나 아렌트는 파시즘을 불러 일으키는 인간 의식을 탐구했으며 언어로 다 할 수 없는 심원한 경지를 향해 나아갔다.

대한민국이란 한나 아렌트의 악을 언급하지만 그 악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심오한 선과 그 급진성에 대해서는 감히 언급할 수준이 되지 못한다.

“악은 진부하다. 악은 극심할 뿐이다. 악은 절대 급진적일 수 없다. 오직 선만이 심오하며 급진적일 수 있다.” – 영화 한나 아렌트(2012) 중에서

한나 아렌트의 중요한 순간은 물론 아이히만과 관련된 것이었는데, 아렌트가 주목한 것은 막시즘이라는 전체주의에 맞선 유태인들의 전체주의였다.

그러므로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에서 말했다.

“외로움은 고독이 아니다. 고독은 혼자임을 필요로 하는 반면 외로움은 다른 사람들과 가장 첨예하게 어울린다…전체주의는 외로움이 고독으로, 논리가 사유로 전환될 기회를 빼앗았다”

대한민국에서 촞불좀비들의 전체주의 파티에 애시당초 고독이란 없었으며 고독이 뭔지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들은 단지 더불어 떼지어 다니며 아드레날린을 나누었다. 말끝마다 논리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 그들은 사유가 없었으며 사유란 당췌 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나 아렌트는 그의 유작 ‘The Life of The Mind’에서 가물가물하게 멀어져 가는 홀로 걷는 심원한 경지, 도에 이르렀다.

“시간이란 마음의 안절부절못함, 그것의 미래로 뻗어나감, 그것의 투사, 그리고 ‘현 상태’의 부정으로 인해 생성된다.”

같은 책에서 한나 아렌트는 매순간 무지에 의해 생성되는 인간의식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화엄적 세계관이다.

“철학적인 자유, 의지의 자유란 정치 공동체 밖에 사는 사람들, 즉 고독한 개인들과만 관련이 있다…인간은 매순간 새로 태어나므로 자유가 운명이고, 이 사태는 쾌(快)와 관련있다.”

그러므로 삶을 즐기려면 즐겨라. 단 고독해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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